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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와 혐오에 기초한 투표
제목 SNS와 혐오에 기초한 투표
등록일 2012.12.24 조회 6048
이호영 이미지
이호영미래융합연구실
부연구위원

18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아무래도 사회학자라는 집단은 인구학적 배경을 중시하다보니 이번 선거의 50대 투표율 89.9%라는 수치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수치는 비상한 집단적 위기의식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수치다. 물론 이 결과는 출구조사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무작위표집의 결과에 비해 대표성이 떨어질 수 있고 5시까지만 조사한 것이기에 조사주체가 전체 투표율을 잘못 추정했을 경우 오류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실제 유권자 비율과 최종투표율을 계산해보면 89.9%는 잘못된 수치다). 

하지만 언론이 이를 일제히 50대의 반란이라고 대서특필하면서 마치 50대가 이번에만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대통령선거를 기준으로 살펴봤을 때 50대 투표율은 15대부터 18대까지 한결같이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대선 직후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이러한 현상을 저마다 분석하는 글들과 퍼나르는 글들이 가득하다. 특히 2040 세대의 미래를 5060이 결정했다는 데에 대해 분노하는 글들이 많은 것 같다. 89.9%라는 수치가 불완전한 것이므로 여기에만 의존하여 이 글을 완성할 수는 없지만 SNS 열풍과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소셜 선거라고까지 일컬어졌던 이 선거가 상대방에 대한 혐오, 나아가 세대 간의 혐오로 불붙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학에서 세대(世代, generation)란 같은 시대에 살면서 함께 시대의 상황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전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는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경제적 토대의 공업화와 멘털리티의 근대화가 진행되던 산업사회에서 중년기를 보내고 초로에 정보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 한 세대가 존재한다. 이들은 한 생애주기를 통해 인류 역사의 중대한 변화와 단절을 한꺼번에 경험했으며 또한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후속세대는 오히려 정보사회에 더 친숙하며 산업사회의 규준과 규범을 따라가지만 가치지향은 탈근대적인 세대다. 이 두 세대의 중간에 성장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기대하며, 민주주의를 통해 보다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질 것을 꿈꾸어온 세대도 있다. 이렇게 판이한 경험의 차이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각차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에 대한 호오 감정의 차이를 낳는다. 

아마도 어느 사회, 어느 공동체에서나 어느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해 가느냐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그 차이를 극단적으로 주장한다면 아마도 분리주의로 귀결될 것이고 그 차이를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독재국가나 전체주의가 답일 터이다. 그 차이와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공동체의 틀을 깨지 않는, 지금까지 나온 가장 합리적 제도는 선거다. 따라서 선거는 그 본질상 소셜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한 SNS나 커뮤니티로 대표되는 온라인 상에서만 본다면 이번 대선은 ‘혐오에 기초한 투표’가 아니었나 싶다. 내 후보가 정말 좋고 이게 미래를 위한 대안이라기보다는 상대 후보가 혐오스럽고 저 후보 옆에 있는 누구누구가 날뛰는 꼴만은 보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혐오에 의한 투표가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그 투표에 기대고 있는 집단의 자기 반성과 성장을 막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를 지지했든 SNS 공간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말들이 혹여 반대편 또는 부동층이 혐오감을 갖도록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SNS 라는 공간은 몇 명의 발화자와 수화자, 그리고 많게는 몇 십만의 관전자로 이루어진 곳이다. 표현의 자유는 마음껏 누리고 검열의 시선에는 저항하되 가끔씩은 관전자의 시선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무리 안에 있을 때 너무너무 즐겁고 환상적인 대화들이 반보만 밖에서 봐도 우스꽝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에헴’하는 사람들의 헛발질은 대개 자기들끼리 하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적 공간에서 할 때 일어난다. 굳이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라는 카테고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SNS는 진정 독배나 다름없다. 온라인에서 상당수가 관전자에 속하는 50대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지켜보면서 모욕감을 맛봤다고 전한다.

올해 초 은교라는 영화가 상당한 논란 속에 개봉된 적이 있다. 그 영화의 대사를 원용하자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 태어난 것이 젊은이들의 노력의 덕이 아니듯이 산업사회에서 살아온 것도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다. 소통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현재, 오히려 디지털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더 많은 갈등이 발견되고 이 갈등이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보이지 않는 것은 소통의 엔트로피가 높아질수록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도 동시에 증가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일종의 지체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대선을 치르며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한 반감이 다른 세대에 대한 혐오로 불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언론이 엄정성이 아닌 선정성에 기대어 그 혐오를 부추기는 일만큼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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