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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귐(tweet)에 대해 주절거림
제목 지저귐(tweet)에 대해 주절거림
등록일 2011.05.26 조회 5727
이호현 이미지
이호현동향분석실
위촉연구원

지저귐(tweet)에 대해 주절거림

작년 가을 즈음으로 기억한다. 스마트폰을 예약 주문 끝에 손에 거머쥐고 이런저런 어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으면서 트위터 어플리케이션도 함께 다운 받았다. 며칠 동안은 다운만 받고 화면 속에 곱게 모셔만 두었다. 다운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입을 해야 했기에 귀찮기도 했고, 계정만 만들고 처음엔 조금 사용하다가 곧 시들해진 수많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처럼 (적어도 내) 트위터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온라인에서의 소통에 의욕도 없고, 희망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트위터를 부지런하게 한다는 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이랬던 내가 작년 10월 24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트위터를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IT 서비스들이 출현할 때 마다 매번 ‘글로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위터란 각 사용자가 140문자 이내의 단문, 즉 트윗(tweet)을 투고하여 그 트윗을 다른 사용자들이 등록(follow)하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이다”라는 설명보다는 한 번 가입해서 써 보는 것이 이해하기도 쉽고 빠르게 배울 것이라는 생각에 트위터에 가입했다.

트위터를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나의 프로필은 팔로잉(내가 구독하는 다른 사람들의 트위터)64명, 트윗12개, 팔로워(내 트위터를 구독하는 사람들)12명으로 소박하다. 이른바 입은 꾹 닫은 채 눈만 껌벅거리는 이용자이지만, 출퇴근길에 트위터 어플리케이션을 한 번 이상은 눌러보면서 느낀 점들을 나누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IT 업계 사람들을 중심으로 팔로우를 시작했다. 다른 SNS의 친구 추가와는 달리 그 사람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이 한 번의 터치로 그가 트위터 상에서 내뱉는 말이 나에게로 전달되는 것을 보니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발언 그 자체라는 인상이 강했다. 내 타임라인에 가득한 IT 동향들을 보고 있자니 재미가 없어서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 소설가, 정치인들을 추가하다 보니 어느새 팔로잉 숫자가 50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는 사이 몇몇 지인들도 트위터를 시작하여 팔로우 버튼을 눌렀다.

“트위터 하세요?” 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사용도 손에 익었기에 나름 트랜드에 뒤지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온라인상에서도 소통하고 있다는 묘한 자부심을 느끼며 한동안 트위터를 이용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게 트위터 권태기가 찾아왔다. 자신의 삶을 생중계 하듯이 쏟아내는 A의 트윗, 확고한 정치적 이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 B의 트윗, 고급스런 취향을 자랑하는 허세 가득한 C의 트윗에 권태를 느꼈다. 내가 그 사람을 팔로우 했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감수하며 들을 수밖에 없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유난히도 까칠했던 어느 날 나를 불편하게 만든 그 모든 트위터들을 타임라인 상에서 제거하기로 마음먹고선 팔로워의 재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내가 팔로우 했던 사람의 트윗에 들어가 언팔로우(unfollow) 버튼 터치 한 번으로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팔로우가 일방적이었던 것처럼 언팔로우 역시 일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오프라인에서의 인간관계처럼 미안해하지도 또는 구질거리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과정이었다.

나름 정리된 타임라인을 다시 읽으며 한 번의 터치로 내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고, 듣기 편한 소리들이 담긴 트위터들만 팔로우를 하다 보니 건전한 비판 속에서 성장하기 보다는 결국 내 생각을 한 번 더 검증 받고 공고히 하면서 오만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염려도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고 비판하고 인정하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기 보다는 쿵짝이 맞는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떠는 수다에서 안정감을 얻는 오프라인에서의 내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것만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데,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은 죄다 뱉어버린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트위터 초기에 느꼈던 내가 온라인상에서도 ‘소통’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트위터만 이용하면 자신이 디지털화되어 있는 커뮤니케이터라는 순진한 착각이자 환상이었던 것이다. 트위터에 가입하던 첫 날부터 나는 소통 의지는 없이 하는 시늉만 해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하나 늘었을 뿐이고,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많다고 해서 더 풍요로운 생각을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나눈다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다. 
누군가 내게 다시 “트위터 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예전처럼 해맑게 “예”라고는 못할 것 같다. “하긴 하는데…저…그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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