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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빙글 문군
제목 빙글빙글 문군
등록일 2011.11.08 조회 4958
문성철 이미지
문성철우정경영연구소
전문연구원

요즘 업무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략 이렇다. 먼저 핸드폰 DMB 어플을 켜서 맘에 드는 채널을 고른 후 소리를 크게 키워 침대 위에 놓는다. 책장에 꽂힌 만화책 중 그날 기분에 맞는 것을 골라 손에 펴 든다. 그리고 울퉁불퉁 돌기가 달린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성에 안차는 날은 라디오를 DMB와 다른 채널로 맞추어 크게 틀어 놓는다.

이런 짓을 반복한지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 우중형제라는 만화책 몇 권인가에 주인공 난바 뭇타가 실내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뭔가를 먹고, 또 그 와중에 라디오를 들으며 신문까지 동시에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따라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일본인 대표로 우주 비행사에 선발될 만큼 대단한 인재인 난바 뭇타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지난 두 달 동안의 성과라고는 고작 훌라후프를 조금 더 잘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뿐이다. 그 와중에 들은 DMB 프로그램이나 만화책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으며 또 겨우 기억한다 하더라도 내용이 범벅되어 이상하게 변질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소질 없음을 진작에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도가 생각이나 기억들을 떨쳐버리는 데 꽤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만화에서도 난바 뭇타는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을 때 무리하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함으로써 머릿속을 쓸데없는 정보들로 가득 채워 걱정거리를 밀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동생인 히비토는 형의 이런 모습을 보며 빙글빙글 뭇타(?)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무슨 상념이 그리 유별나게 많아서 이런 짓을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쌓이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념이나 정보들을 떨쳐내기 위함인데, 정보를 밀쳐내기 위해 또 다른 정보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행동이 아이러니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시간이 이제 제법 익숙해졌고 그 결과는 꽤나 만족스럽다. 기행에 대한 자기 정당화일지 모르나 이런 시간 투자는 다음 날 일과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꽤나 넉넉한 머리와 마음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머릿속이 멍해진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한다.

인생을 살면서, 특히 업무를 위해 여러 가지 정보들을 불가피하게 접하게 되는데 가끔은 각종 매체에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로 인해 눈과 귀가 맵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우편함에는 주기적으로 동향과 정책들이 배달되고 매일 아침이면 이메일함에도 각종 소식지며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수시로 울리는 전화기 벨소리와 깜빡이는 메시지들은 도통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정보의 끝판왕인 포털사이트에라도 잠깐 접속할라치면 슈스케의 우승자 예상과 공항패션 종결자 등을 알리는 기사들이 반짝반짝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이 모두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아니다. 더욱이 정보통신을 연구하는 직장에 근무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매체를 접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수취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업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정보 속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다가 그런 정보에 익숙해져 대화나 행동의 깊이가 얕아져버리는, 그런 상태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문득문득 어쩌면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빙글빙글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가진 능력 차이로 인해 처리할 수 있는, 그리고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다 다르니 누군가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메일을 체크하고 동시에 책을 읽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범인이라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는 취하되 그렇지 않은 정보는 덜어내는 방법이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의 속도에서 빌게이츠가 얘기하는 정보관리 요령에 비추어 보면 참 허접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이 방식을 택했고 그래서 오늘도 훌라후프를 돌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뭐 아무도 이 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한들 어쩌랴. 뱃살이라도 빠질 것이라는 기대와 위안이 남아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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