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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제목 동경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등록일 2011.10.11 조회 5668
박찬경 이미지
박찬경방송·전파정책연구실
연구원

입사하기 바로 전,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 저는 동경에서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모바일 인터넷 기술과 제도를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겠다는 멋들어진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진짜 목적이었는데 깜빡 한 건지, 애초부터 핑계였던 건지, 매일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을 거르고 근처 공원을 어슬렁거리다 싸구려 도시락이나 까먹는 한량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간혹 일본인 지도교수도 만나고, NTT 도코모, KDDI 관계자들을 인터뷰 하기도 한 것 같은데, 주로 그 아저씨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저와의 인터뷰 보다는 카라와 소녀시대 였더랬습니다.

누가 게으름 부리러 돈 써가며 그 먼 곳까지 갔느냐고 한다면, 동경에서 인터넷을 쓰고 전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공부였다고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접하는 정보통신환경이란 우리 기준에서 보면 꽤 충격적 입니다. 우린 일본이라는 나라가 IT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일본 어딜 가보아도 깨닫게 되는 것은 서울만큼 IT 인프라가 좋은 도시는 없다는 사실 입니다. 동경에서 지하철 운행 중에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관광객들의 입소문으로 꽤 퍼져서 유명한 얘기이지요. 지하철이 아니라도 아무데서나 전화가 툭툭 끊어지는 것이 예사라는 건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마는요. 학교나 유명 커피숍에 가도 와이파이를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노트북으로 와이파이를 쓰는 일본인도 그리 많지 않고, 스마트폰도 한국만큼 흔하지 않으니까요. 작년 말까지 일본 이동전화 2위 업체인 KDDI가 스마트폰을 한 대도 출시하지 않았을 정도니까 알만하지요.  그렇다고 유선랜이 빠른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처럼 쉽게 영화나 TV 프로를 다운받아 보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일본의 IT 환경이 생각보다 뒤떨어져서 충격적이라는 것이냐?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우리 눈에는 뒤쳐져 보이는 환경에서도 일본인들은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모바일 기기를 훨씬 예전부터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인터넷이 중간중간 끊어지는 환경에서도 약간 유행이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피쳐폰을 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길 찾기, 뉴스 검색, 모바일 뱅킹, 호텔 예약처럼 한국에서는 아이폰 이후에나 모바일 기기로 가능했던 일들을 일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하네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와이파이도 안 잡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저 사람들은 노트북으로 뭘 하나 했더니, 저 노트북들에는 다 USIM 칩이 심어져 있다고 합니다. 현지 친구 이야기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는 3G망을 이용해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물론 우리 기준에서는 느리죠. 성격 급한 한국 유학생들은 속 터집니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이 정도 속도와 기기 성능으로도 충분하다는 식입니다.

꼭 일본이어서가 아니겠지요. 살던 곳을 벗어나보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길이 전부는 아니더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우리가 인터넷은 일단 빨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과 달리, 일본은 아직 빠르지 않아도 적당한 무게에 적당한 내용을 가진 콘텐츠들이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어지간한 노트북만큼이나 빠른 요즘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것에 비하면 조잡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 첨단이라고 여기는 서비스들을 10년 전부터 제공해 왔다고 하니, 이것도 스마트폰 만큼이나 놀라운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예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나 좋은 인터넷을 가지고 있는데도 늘 뭔가 불만이었다면, “빠르고 싼” 인터넷 말고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혁신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또, 그런 고민의 결과가 기존의 통념이나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감도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요?

아이폰이 한바탕 우리 정보통신 산업을 뒤흔든 이후로 이제 한국에서도 통신망 고도화가 아닌 다른 것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콘텐츠, 생태계 등을 언급하는 연구나 정책들이 바로 그런 시각 변화의 소산이겠지요. 하지만, 어쩐지 이러한 정책들은 고등학교 국사책 외우듯 이미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외국의 혁신을 암송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 연구자 입장에서 자괴감도 듭니다. 아이폰처럼 당장 세계를 뒤흔드는 혁신은 아니더라도 일본인들의 IT 생태계가 그러하였듯 우리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 거실에 놓여져 있는 TV를 통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혁신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연구가 그런 혁신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추신 : 틈틈이 이 글을 쓰는 동안 IT 분야에서 창의력과 자신감의 상징과도 같았던 잡스 형이 돌아가셨습니다. 까칠하고 호전적인 성격에 고집불통이었다죠? 우리 원장님이었다면 참 미웠겠지만, 그 분의 혁신은 한낱 수백만 아이폰 이용자 중 한 명에 불과한 저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몰라도 잡스 형이라고 부릅니다. 잡스 형, 감사했습니다.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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