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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짜리 물 한 병과 맨발의 아이들
제목 1달러짜리 물 한 병과 맨발의 아이들
등록일 2008.08.05 조회 5363
박지원 이미지
박지원APII협력센터
연구원

누구에게나 한 번씩 살면서 아주 강한 자극으로 오래 남는 경험을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 경험이 5년 전 여름에 있었다. 그 일은 국제관계를 전공으로 공부했던 지난 2년의 시간 동안에도, 그리고 연구원으로서 아·태 지역의 정보통신 협력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떠나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있다. 아마 이런 경우를 일컬어 인생의 “전환점” 이라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2003년 여름, 친언니와 함께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아야 할 유적지라는 앙코르와트는 웅장했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큼 신비한 곳이었다. 그 곳은 10시간이 넘게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털털거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에 앉아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면서도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하지만 장엄한 광경을 선사하며 시종일관 내 시선을 압도했던 앙코르와트를 한 편에 두고 캄보디아로의 배낭여행은 나에게 두고두고 되새길 만한 한 가지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미지배낭여행의 시작점에서 나는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들어가는 국경지대를 내 발로 걸어 들어가면서 국가 간의 경계를 걸어서 넘는 최초의 경험에 짜릿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국경 근처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에게 1달러짜리 물 한 병을 파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 아이들은 내 눈에 고작 다섯 내지 여섯 살로 보였다. 더군다나 고만한 나이의 어떤 아이들은 한 두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동생들을 업고 다니며 물을 팔았다. 오로지 외칠 수 있는 영어 단어 하나라고는 “원 달러”였다. 7월의 캄보디아 날씨는 무더웠고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차들로 인해 도로에서는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속을 지나다니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아이들은 생수병을 손에 들고 다니며 팔고 있었다. 먼지를 실컷 뒤집어 쓴 나는 목이 말라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물을 다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마 그곳을 지나는 무수한 국적의 많은 관광객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터다.

아이들을 지나쳐 캄보디아 입국 비자를 받고 버스에 다시 오르는 순간까지 내 머리 속은 많은 생각들로 휘감겼다. 그 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은 신문 기사를 통한 것이었고, 딱 그 만큼만 내게 와 닿는 문제였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큰 거리낌 없이 쓰는 1달러의 돈이 누군가에게 정말 절실한 것이라고 느낀 그 직접경험은 그저 하나의 읽을거리에 그치고 말았던 빈곤과 많이 달랐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전 세계적 불평등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감상적이었던 것이라 깨달았다. 그래서 난 그 순간 이후로 적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내 생각을 말로써 나타내는 것만이라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한 실천이 아주 잘 되고 있지는 않다. 국제관계를 전공으로 공부하면서 나는 때때로 빈곤 문제에 대한 책이나 교과서를 읽었고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을 내뱉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대학원 생활의 끝자락에 나는 연구원에 들어왔고, 지금까지 세 번 APEC 내 정보통신 협력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다른 많은 국제회의들도 비슷할 것이라 예상되지만, APEC 정보통신실무그룹 회의와 APEC 통신장관회의에서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두고 경제와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는 각 회원체들의 청사진이 발표된다. 또한 21개 회원체의 협력 하에 공동 번영을 위한 정보격차 해소와 아·태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순간들마다 캄보디아 국경의 소녀들이 떠오르곤 했다. 물론 캄보디아가 APEC의 회원체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나는 캄보디아의 장관이나 대표가 정보통신과 관련된 국가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빈곤의 환경에 놓인 삶의 조건은 세상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가능성과 맨발로 걸어 다니는 아이들의 현실 사이에는 많은 격차가 놓여 있다.

물론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 나는 그 때 내가 보았던 그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 지 알 수 없다. 정확한 통계자료를 살펴본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까지 그러한 영상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은 그 자체가 나에게 풀리지 않는 고민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인식이 공중에 부유하는 물질로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같은 생각의 주위를 맴돌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숙제도 계속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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