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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기조례와 니콜라 테슬라 사례의 시사점
제목 적기조례와 니콜라 테슬라 사례의 시사점
등록일 2008.08.26 조회 6655
이은곤 이미지
이은곤통신방송정책연구실
주임연구원

현대의 기술 발전의 속도는 과거 몇 천 년 동안의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가공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발전의 속도 때문에 종종 사회시스템이 기술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또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기술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의 경우, 여타 기술 분야에 비해서도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기술을 어떻게(how) 사회 시스템에 접목하여 그 효과를 최대한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정보기술과 사회시스템을 동시에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하면서도 여러 경우에 통용될 수 있는 불변의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과거 적기조례의 사례나 또는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처럼 최소한 오답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형 증기자동차 이미지
미국의 스탠리 형제가 설계하여 1897년부터 1902년까지 4,000대가 생산된 소형 증기자동차
(자료 : 삼성자동차박물관 소장. 네이버, http://www.naver.com)

적기조례(Red flag act)는 1864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포하였던 세계 첫 자동차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영국 내 모든 자동차는 운전사, 화부 외의 안내원등 3인의 운전자가 답승하여야 하며, 안내원은 붉은 깃발을 들고 55m 전방에서 차와 같은 속도로 달려가면서 행인이나 가옥에 자동차가 온다고 깃발을 흔들며 소리쳐야만 하였다. 또한 자동차는 시내에서는 시속 3Km, 시외에서는 시속 6Km로 속도를 제한하였고 2톤 단위로 적재화물에 대한 세금을 물었을 뿐만 아니라 시 경계나 주 경계를 넘을 때는 도로세를 내야만 했다. 또한 밤에는 촛불이나 가스등을 달고 운행하게 하였으며, 당시의 대중교통수단이었던 객마차와 기차에 비해 세금 또한 10배 이상이었다.

적기조례가 제정되게 된 배경으로는 증기자동차의 보급으로 운송업계 등 실업자가 늘어나고 도로 파손과 검은 연기로 시민의 반감이 일어나자 자동차 발달을 못마땅하게 여겨 온 마차와 철도업자들이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는 압력을 넣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의 매일 자동차를 이용하여 생활에 도움을 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거의 넌센스 수준의 법이지만 당시로서는 기존 운송 시장에의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면서, 계속적으로 자동차의 기술발전 추세를 지켜볼 수 있으며, 증기자동차로서 당시 자동차의 한계점을 감안한 법률이었다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정책 수립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변수들을 ‘현재’의 상황으로 한정하여 정책방안을 도출함으로써 1862년 발명된 2행정 엔진1) 및 이후 나타나게 될 내연기관 및 자동차 양산 가능성 등의 ‘자동차’라는 기술의 발전의 잠재성을 과소평가하였으며, 지나치게 당시의 사회시스템에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결국 적기조례 시행에 따라, 당시 최고 시속 40km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6km로 제한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꽃이 피기 시작한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이 법에 묶여 서서히 빛을 잃어 갔으며, 유럽 대륙과 미국에서 휘발유 자동차가 꽃을 피우던 1900년대까지 동면에 빠지게 된다. 동 조항 등은 1896년 11월 4일 속도제한 규정 등이 삭제되면서 사실상 폐지되게 된다.

적기조례의 예처럼 발전하고 있는 첨단기술을 현재의 잣대에 따라 재단하여 기술의 잠재성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현재의 사회시스템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앞선 기술에 집중하여 큰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가 그러하다.

니콜라 테슬라 초상화
니콜라 테슬라의 초상화(자료 : 네이버, http://www.naver.com)

니콜라 테슬라(1856~1943)는 ‘과학문명을 1백년 앞당긴 천재 과학자’, ‘우주에서 길을 잃어 지구에 잘못 태어난 외계인’등을 별명을 가질 정도로 시대를 앞서나간 과학자로서 평가를 받는 동시에 당시에는 ‘몽상가’로 여겨지기도 하는 등 평이 엇갈린 인물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태생인 테슬라는 28세 때인 1884년 미국으로 이주해 교류전압 송신, 다상교류 시스템, 무선통신, 고압전원을 만드는 케슬라 코일, 형광등, 라디오 등의 발명 등 수많은 중요한 발명과 선구적 업적을 이뤄냈다.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네는 기본 단위 T는 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혁혁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생전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운한 생애를 살았다.

그가 이렇게 불운한 생애를 살았던 이유는 그가 상업적인 가치를 배제한 순수한 발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에디슨, 마르코니 등 당시의 발명가들과 차별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업적이 너무나 시대를 앞서나간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었다. 테슬라의 꿈은 세계 곳곳으로 통신을 가능하게 하며, 기상을 조절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꺼지지 않는 빛을 만들고, 다른 행성에 존재한다고 믿는 생명체와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가 연구했던 무선에너지 전송기술, 테슬라 터빈, 테슬라 엔진, 입자빔 무기, 공간 자체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뽑아 쓰는 실험 등은 현재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뒤를 이어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연구 중에 현대 과학자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작은 공 모양의 전기덩어리(구형 번개라고도 불린다)를 마음대로 만들고 다루는 시범을 여러 차례 선보였는데 이 현상은 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혁신적인 돌파구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과학자들은 이를 시현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보기술을 어떻게(how) 사회 시스템에 접목하여 그 효과를 최대한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적기조례와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를 감안할 때, 정책방안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잠재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견지하는것이 좋으며 또한 기술 및 사회환경변화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의 탄력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 1862년 벨기에의 에치엔느 르노와르(Lenoir)는 석탄가스와 공기의 혼합 기체가 수평 실린더의 양끝에서 교대로 공급되어 배터리의 전기 불꽃이 그 연료를 점화해 발생하는 폭발이 피스톤을 좌우로 움직여 수직으로 회전시키는 2행정 엔진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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