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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씨 제작진 전 상서
제목 영애씨 제작진 전 상서
등록일 2013.11.11 조회 6277
이은영 이미지
이은영통신전파연구실
인턴연구원

나는 어린 시절부터 텔레비전 중독자였다. 10대 시절에는 사극 드라마를 좋아해 실제로 ‘허준’ 제작진에게 편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전광렬 팬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시청행태를 보였다. 20대 때에는 미국 드라마 ‘Heroes’ 시청을 시작으로 소위 말하는 ‘미드족’이 되었고, 결국 나는 방송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미국 드라마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한국 드라마에 편견을 갖고 있던 20 대 중반 어느 날, tvN에서 자체 제작한 ‘막돼먹은 영애씨’를 접하게 됐다. 미국의 ‘섹스앤더시티’는 뉴욕 싱글 여성들의 화려한 삶과 사랑이야기를 다뤄 국내 여성들의 동경을 자아냈다면, 한국의 ‘막돼먹은 영애씨’는 서울 싱글 여성들의 직장 생활과 사랑이야기를 다루며 동감을 자아냈다. 케이블 방송이라 공중파 드라마보다 수위 조절에 있어 자유로웠던 점도 있지만 대한민국 대표 노처녀 직장인 영애씨의 묘사는 너무 리얼했고 대사와 표정 하나 하나가 나를 반영한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아마 20대 후반부터) 괜한 찔림에 ’막돼먹은 영애씨‘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찬양하는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즌 12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대거 투입했다. 그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외국인 노동자 ‘스잘’.

막돼먹은 영애씨에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스잘석사학위 논문으로 국내 지상파 드라마 내 외국인 등장인물의 인구학적 특성과 묘사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스잘’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연구를 통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드라마에 나타난 외국인 등장인물들을 분석했더니, 2006년 이후로 드라마 내 외국인 등장인물의 인구학적 특성이 다양해지긴 했으나 극히 제한적이며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성적·인종적 고정관념과 사대주의가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제작진이 어떻게 묘사를 해야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명확히 얻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막돼먹은 영애씨’ 제작진은 스잘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하고 기대됐다.

1회, 2회에선 주변인으로 별 다른 특징을 보이지 않던 스잘은 3회에서부터 그 진가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고 아이패드를 비싸게 파려는 사장에게 ‘중고나라에선 얼마까지 해주더라’라는 말을 하며 가격 흥정을 하는 스잘의 모습은 우리가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기에 관심이 많고, 온라인 카페 활동을 하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또한 스잘은 단순히 세상 물정 모르고 순종적인 외국인 노동자로 그려지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직장 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하여 라이벌인 남성 동료가 수입차 몰고 다니는 20대 여대생과 사귄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외국인 등장인물을 무조건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그리는 것이 다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극 중 인물들과 잘 어우러지도록 일상성을 강조한 자연스럽고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어야 인종에 대한 차별적 태도가 고착된 한국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막돼먹은 영애씨의 제작진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샘 해밍턴, 크리스티나와 같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캐릭터를 지닌 외국인 방송인들의 출연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예능으로 한정되어 있을 뿐 드라마에선 그 다양성과 묘사 방식이 제한되어 있다. 또한 아직 한국은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방송통신 정책 및 법제도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와 관련한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명확한 지침 설계와 프로그램에 등장한 외국인의 묘사를 평가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고착이 필요하다. 물론 방송사 내에서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실제로 영국의 공영방송인 채널 4와 같은 경우, 외부 제작자들이 제출한 프로그램 기획안을 보고 제작위탁을 추진하는데, 다양한 소수집단의 이해를 반영시키기 위해 초기 기획안에 등장인물들의 인종과 나이, 장애 여부 등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해당 기획 프로그램이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이유를 제시하도록 되어 있다.

여성결혼이민자나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사회통합 뿐만 아니라 국민의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방안들이 나오고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재현해내는 이주민 혹은 외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시청자들의 이에 대한 인식 형성뿐만 아니라 스테레오타입 형성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문화 현실 속 외국인을 묘사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막돼먹은 영애씨’ 제작진에게 나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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