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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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번들상품 체험 소고(小考)

  • 작성자김희수  연구위원
  • 소속공정경쟁연구실
  • 등록일 2006.06.02

필자는 작년 5월부터 1년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 곳에 살면서 전화, 케이블TV 등 여러 가지 통신 방송 서비스 이용을 경험하였는데 몇 가지 우리나라와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는 번들상품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기에는 빨리 정착하느라 별 생각 없이 한국에서처럼 전화, 케이블TV, 인터넷, 이동전화를 개별적으로 가입해서 이용하다가(전화=SBC, 케이블TV=TimeWarner, 인터넷=전력선 인터넷회사, 이동전화=Verizon), TV와 우편물을 통해 집중적으로 광고되기 시작한 TimeWarner사의 ‘케이블+초고속인터넷+전화’-이른바 TPS(Triple Play Service)- 로 가입을 전환했다. TimeWarner사가 제공하는 전화는 상품명이 ‘디지털폰’으로서 인터넷 전화(VoIP)였다. 얼마 후에는 전화사업자인 SBC가 유사한 TPS 번들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TimeWarner 디지털 폰의 통화품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전체적으로 요금이 더 저렴해 보이는 SBC 번들로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미국내에서 전화를 그리 많이 쓸 일도 없었고, SBC가 제공하는 DSL이 케이블 모뎀에 비해 느리다는 TimeWarner 광고가 왠지 사실일 것 같은 느낌도 들어(미국은 아직 케이블 모뎀 방식의 초고속인터넷 이용자 비중이 더 높다는 점을 고려했음) SBC로의 가입전환은 하지 않기로 했다. 더욱이 SBC 번들에 포함된 방송은 DirecTV사의 위성방송이었는데 위성으로 전달되는 공중파 방송의 경우 지역 날씨/교통 정보를 제공해주는 지역방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실내 안테나로는 전국/지역을 불문하고 공중파 방송이 잡히지 않음)도 SBC로의 전환을 꺼리게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결국 전화품질이 강점인 전화사업자의 번들보다는 방송 컨텐츠와 인터넷이 강한 케이블사업자의 번들을 택한 것이다. SBC의 경우에는 Cingular사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서 이동전화까지 포함된 번들-이른바 QPS(Quadruple Play Service)-도 제공하였지만 필자의 경우 이미 Verizon에 1년 가입약정을 한 상태여서 SBC 번들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미국에서 필자가 주목한 또 다른 현상은 인터넷 전화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TimeWarner의 디지털폰도 인터넷전화지만 이미 우리에게도 알려진 Vonage라는 사업자가 연일 저가 요금상품 광고를 내고 있었다. 필자는 결국 TimeWarner의 TPS 패키지에서 디지털 폰을 해지하고 Vonage로 전환했다. TimeWarner 번들내 전화의 월 정액료가 40달러인 반면 Vonage의 정액요금은 25달러였고 국제전화료도 TimeWarner보다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화의 경우 필자는 SBC에서 TimeWarner로 그리고 Vonage로 가입전환을 한 셈이 되었다. 번호이동성이 보장되고 번들 구성의 선택이 꽤 자유롭기 때문에 이러한 mix and match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들상품 선택 과정에서 발견한 미국 통신상품의 또 다른 특징은 많은 전화상품이 정액제로 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내전화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정액요금 상품이 선택 요금제 중 하나로 도입된 바 있지만 장거리전화도 정액제 형태로 출시되어 번들에 포함됨으로써 번들 전체가 정액제로 과금되고 있다. 만일 번들의 일부 구성상품이 종량제로 과금된다면 그 상품의 세부 사용내역을 별도로 이용자에게 알려줘야 하고 이용자들도 하나의 단순한 요금으로부터 받는 하나의 상품이란 느낌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케이블 TV진영과 전화진영의 통신방송 번들상품 경쟁으로 말미암아 경쟁이 발생하는 기본 단위가 개별 시장에서 통합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 대응하여 SBC는 Cingular, AT&T 등을 인수합병하여 수직계열화하고 브랜드도 과거 통신의 상징이었던 AT&T로 통합하고 있다. 과거 통신장비를 포함해 통신의 모든 요소들을 수직통합했던 AT&T가 1984년 미 법원의 동의명령(consent decree) 이후 해체와 쇠락의 길을 걸어오다 SBC에 인수되어 재통합되는 모습을 보면서 통신시장의 역동성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재통합될 것을 규제당국이 수직적 분할을 명령하여 경쟁력만 약화시킨 것 아니었느냐 라는 지적도 있고 새로운 기술(무선, VoIP 등)에 의해 경합성이 형성되니 개별시장(특히 시내전화)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려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때마다 적절하게 bottleneck을 풀어주는 정부개입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규제당국은 기술과 시장의 동태적 변화에 대한 미래지향적(forward-looking) 안목과 이에 기초한 유연한 제도를 갖추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번들 경쟁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관련 제도가 정비되어 시장 리더들이 제대로 번들상품을 출시하게 되면 이제 우리도 경쟁의 양상이 통합시장 중심으로 바뀌는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통합 환경에 대응하여 사업자들은 연관분야로 직접 진출하거나 다른 사업자와의 제휴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통신분야에서 수직통합된 구조를 가진 기존 사업자들의 우위가 유지 확장될 것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신영역 밖에 있던 방송진영의 사업자가 통합 시장에 들어와 경쟁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함으로써 전반적으로 경합성이 증가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통합 환경에서는 시장의 경계를 사전에 획정해 놓은 현 법체계의 한계가 노정될 것이며 따라서 이미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수평적 규제체계로의 전환이 촉진될 것이다. 또한 수요공급의 대체성을 기준으로 한 경제적 시장획정 작업이 중요성을 더해 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통신과 방송을 각각 다른 기준으로 규율하고 있는 현재의 이원화된 규제구조의 개선 요구가, 적어도 공정경쟁정책 측면을 중심으로, 크게 증가할 것이다. 시장의 요구에 너무 늦게 반응하여 새로운 경쟁구도의 형성과 신규서비스의 활성화가 지체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약 력 --------------------------------

+ 고려대 영문학 학사
+ 고려대 경제학 학사
+ UCLA 경제학 석·박사
+ 1995.01 ~ 현 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1998.01 ~ 현 재 : 한국산업조직학회 편집위원
+ 1993.03 ~ 1995.01 :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 부서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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