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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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서비스 ‘되팔기’

  • 작성자이재영  책임연구원
  • 소속공정경쟁정책연구실
  • 등록일 2008.04.14

통신서비스 요금인가제가 이르면 올 하반기에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가 그 나름 규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던 제도이다 보니, 당장 폐지되고 나면 우려되는 문제들이 있게 마련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요금인가제는 통신서비스 시장의 독과점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시장상황이 충분히 경쟁적이어서 이른바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의 유선 및 이동 통신시장은 그런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요금규제 등을 통해 기업들을 직접 규제하는 대신, 보다 많은 기업들이 통신서비스 시장에 진입하여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보다 시장친화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통신서비스시장에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버티고 있고, 일반적으로 통신서비스 시장의 독점적 성격이 강한 것도 바로 그 시장실패 요인들 때문이다.

통신서비스를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당장 관련 설비가 필요한데, 이들을 단시일 내에 설치하고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물리적·금전적 제약이 대단히 크다. 이미 설치되어 있는 설비가 차지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측면도 있으며, 새로운 공간을 찾기도 쉽지 않다. 또한 이러한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수익이 얼마나 날지 모르는 사업에 이런 식의 초기투자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해결책은 기존 사업자들로부터 설비나 서비스를 일정한 대가를 주고 빌려서 최종 이용자에게 통신서비스를 ‘되파는’ 방법, 즉 도매시장을 통한 재판매시장의 활성화이다. 이렇게 진입한 기업들이 경쟁적인 시장을 만든다면, 기존의 독점적 기업들을 직접 규제(소매규제)하는 방법보다 더 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시장의 경쟁성을 제고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적인 후생을 극대화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고, 이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소비가 이루어질 때 달성될 수 있다. 진입한 새로운 통신사업자들이 효율적이어서 기존 기업들보다 낮은 가격에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경쟁을 통한 통신요금 인하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사례에서 보듯 도매를 통해 진입한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진입 기업의 저렴한 요금만으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보다 본격적인 요금인하는 이들의 저가공세에 대응한 ‘기존 사업자’들의 요금인하 또는 저가상품 출시로 이어져야 가능하다.

문제는 기존 사업자들이 이러한 가격경쟁을 예상하고 이윤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여 도매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려 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회피할 유인이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도매제공의무사업자와 도매제공의무서비스의 지정을 통한 ‘도매규제’이다. 지정된 사업자로 하여금 지정된 서비스를 다른 사업자에게 도매제공하도록 법률로 강제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정도의 규제로 부족하여, 도매제공 ‘대가’ 자체까지 통제해야 실질적인 도매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경제학에서 시장실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코오즈 정리(Coase Theorem)’를 빼 놓고 지나갈 수는 없다. 재산권이나 거래비용과 같은 전제조건만 충족 된다면 정부개입 보다는 민간의 자발적 협상에 의해서 시장실패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우리는 통신서비스 도매규제에 이런 코오즈류의 정책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신서비스나 설비에 대한 재산권은 이미 설정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거래비용만 충분히 줄여준다면, 해당 기업들 간의 자유로운 협상을 통하여 도매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코오즈 정리에는 “협상으로부터 얻는 이득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즉, 관련 기업들이 이 협상에 참여할 인센티브에 대한 문제이다. 특히, 이미 소매시장에서 독점적 이윤을 얻고 있는 기존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이 도매시장에 참여할 유인이 적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이 장면에서는 또 다른 시장실패 이론인 차선의 이론(theory of the second best)을 배우면서 읽었던 한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로 관련된 A시장과 B시장에서 시장실패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면, A시장을 완전경쟁 상태 또는 그에 유사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B시장의 인위적 정책개입이 불가피할 수 있다. 지금 통신서비스 시장에서는 소매시장의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하여 도매시장에 ‘도매거래의무’라고 하는 인위적이지만 현실적인 정책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간 ‘도매대가 규제’에 대해서는 ‘제2의 요금규제’라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대가규제는, 그 적용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두지 않고, 기업 간의 자발적 협상을 유도할 수 있는 자극제 역할에 초점을 두어 운영된다면 충분한 존재가치가 있다. 자율적인 도매협상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고 도매규제의 실질적인 효과(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와 요금인하)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향후 마련될 통신서비스 재판매제도의 성패는 정책담당기구가 이러한 철학을 얼마나 적절히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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