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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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의 붕괴, 우연과 필연의 역사

  • 작성자공영일  책임연구원
  • 소속북한방송통신연구센터
  • 등록일 2009.11.10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 1년이 채 안된 1990년 10월 독일은 동서독의 통일을 맞이하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을 맞아 세계의 언론들은 독일 기념식 현장의 모습, 베를린 붕괴의 역사적 의미, 당시의 생생한 에피소드 등을 경쟁적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 장벽 붕괴 당일의 우연한 해프닝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뤄냈다는 우연론(偶然論)적 관점의 기사가 관심을 끈다.

언론이 전하고 있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당일의 전말은 이렇다. 사건은 이날 저녁 동독 정부가 여행자유화에 대한 조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시작되었다. 여행자유화 조치는 동독국민들의 여행자유화를 요구하는 몇 달에 걸친 시위에 대한 대응조치로 준비된 것이었다. 이 조치는 동서독 국경을 통한 출국을 포함한 해외여행 절차 간소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조치는 기존 정책과 다른 새로운 내용은 없었으며 특별한 내용이라면 여권 발급 기간을 단축한다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자회견의 문답과정에서 대변인의 말실수와 한 이탈리아의 기자의 과잉해석으로 발표 내용이 국경 개방을 뜻하며, 그것도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 기자는 급기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제목의 기사가 긴급 타전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주민들은 서베를린으로 가는 검문소로 모여든 것이다.

순식간에 수천명으로 불어난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우왕좌왕하다 국경수비대는 밤 10시쯤 검문을 포기하고 국경을 개방했다. 동독주민들이 장벽을 올라타 넘어가기 시작했으며 흥분한 일부 주민들은 도끼, 망치를 들고 나와 아예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반대편 서베를린쪽 젊은이들도 망치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서독과 동독 정부 모두 사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리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사를 접하면서 역사의 큰 전환점이나 흐름이라는 것이 그간의 수많은 이론과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아주 우연한 사건과 상황이 직접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유명인사의 인생의 전환점에 대한 글을 읽거나 얘기를 듣다보면 객관적인 조건과 논리적 인과관계로는 설명하기 힘든 사건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대개 이러한 전환점은 아주 우연하고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종종 운명으로 설명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운(國運)이라는 것이 얘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보면 독일 통일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언론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연이 만든 역사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필연이 만든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인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단초가 되었던 여행자유화 조치는 결국 동독 국민들의 민주화, 자유에 대한 요구와 열망으로 인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동독국민들은 호네커 서기장의 동독방송개방 선언으로 1970년대 초부터 서독의 방송을 청취하거나 시청할 수 있었다. 동독국민들은 서독방송을 매일 그리고 장기적으로 시·청취함으로써 서독 미디어가 제공하는 보도, 오락, 가치관, 세계관, 규범, 문화 등에 노출되어 왔다. 동독인의 의식구조는 드러나지 않게 다원주의적이고 민주화의 과정을 충분히 겪어온 것이다. 동독에서 일어난 1989년의 시민혁명은 서독 방송의 동독 주민 의식변화가 누적된 결과로 볼 수 있고 이것이 동독 공산당의 해체와 독일 통일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오랜 기간 동안 동독 주민의 의식변화라는 원인이 축적되고 이러한 원인이 기자회견장에서의 우연적 요인에 의해 발현된 것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고 보는 것이 실상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관점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우연한 그리고, 사소한 해프닝을 계기로 역사적 전환점이 이뤄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과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에 항상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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