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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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관심이 필요하다

  • 작성자이호영  부연구위원
  • 소속미래융합연구실
  • 등록일 2011.06.29

  비극적 삶을 살았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주인공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저주를 받아 소통의 수단을 빼앗긴다. 대표적인 예로 인어공주는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대가로 혀를 잘려 목소리를 영원히 잃어버린다. 마법에 의해 두 다리를 얻은 그녀는 영원히 진실을 말할 수 없게 되고,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을 잃는다. 인어공주가 지금 세상에 왔더라면 트위터에 그대를 구한 사람은 나였노라고 140자도 안 되는 간단한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었고, 페이스북에 가서 대놓고 `좋아요'를 클릭할 수도 있었을 거고, 근처 CCTV를 뒤져 그 시간에 거기를 지나간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몇몇 까칠한 사람들은 그 전에 왜 인어공주는 휴대전화로 인증샷을 남기고 인터넷에 올리는 센스를 발휘하지 못했을까, 용궁 출신이라서 저럴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지금 우리는 바야흐로 소통이 넘쳐흐르는 사회로 가고 있다.

  소통을 위해 동원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시간, 돈, 노동의 양이 실로 엄청나다. 페이스북의 확산을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지구정복 게임을 보는 듯하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2011년 6월 페이스북의 정규 이용자수는 이미 7억 5000만 명을 돌파했다. 페이스북은 거침없이 6대주의 인터넷 유저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개발자와 해커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어디 페이스북 뿐이겠는가. 스마트폰 확산으로 더욱 불붙은 트위터 열풍은 트위터 바깥의 사람들에게까지 그 바람의 세기를 짐작케 하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유명인의 트윗 내용이 이 사회의 어젠다를 결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니 말이다. 올드미디어의 신나는 트윗 인용은 왠지 스스로의 영향력을 갉아먹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뒷맛이 쓰긴 한데 어쨌거나 트위터는 유저의 영토를 넘어 무한대로 확장가능한(scalable) 담론 영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 출신 글로벌 SNS 업체가 집어삼키고 있는 소통의 영역을 바라보고 있는 각계의 마음들은 다급하다. 눈뜨고 앉아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던 자국민의 관심과 소통이라는 기름진 땅을 송두리째 내주게 생긴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애플에게 쩔쩔 매고 있는 단말기 제조업체나 통신사, 소셜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야 할 관련 기업들도 속이 쓰리게 생겼다.

  21세기 소통 혁명의 곁불을 쬐는 한낱 관찰자에게 이 한바탕의 소동은 어쩐지 불편하고 답답하다. SNS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 트윗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관심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SNS에 호명 당해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허둥대며 열심히 빈칸을 채우면서도 정작 노력에 비해 크게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왜 일까. 다시 인어공주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목소리를 잃은 가엾은 그녀의 사랑이 통신수단의 도움을 빌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현대의 작가는 왕자가 과연 제 때 로그인을 할지 로그인 한 다음에는 맞팔을 신청할지 혹은 맞팔을 신청한 사람이 인어공주 혼자일지 생각해볼 것이다. 이제 넘쳐흐르는 소통(수단)은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소리 중에 내 목소리를 들리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장비로 무장하고 네트워크에 수시로 접속해 실시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더 진정성이 있는 이야기를 하도록, 더 호소력이 있도록 우리는 계속 재촉 당한다.

  싸이가 유행하던 시절, 블로그가 대세이던 시절 분명 인터넷은 하고 있었지만 SNS에는 관심 없어 하던 이 사회의 멀쩡한(?) 어른들이 대거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둥지를 튼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야 오랫동안 익숙했던 한 세계와 결별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세계는 인풋을 극대화함으로써 아웃풋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였다. 소통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세계는 소통, `소셜'을 땔감으로 성장하는 사회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SNS는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명성 혹은 평판이라는 자본을 부여하는 구조를 형성하며 이 때 플랫폼은 그 자본을 분배하는 권력이 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소통능력이 소통 그 자체로 치환될 수는 없으며 고스펙이 더 좋은 소통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이 소통을 지배하는 어두운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는 SNS를 둘러싸고 서로 자기 몫을 챙겨가려는 시장의 관심을 넘어서는, 진지한 인문학적 관심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거 안해요라고 말하며 강건너 불구경 하기에 이미 SNS 열풍이 너무 뜨겁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6월 29일(수, 22면) [디지털 세상]에 게재된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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