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세계적인 추모 열기는 그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기업경영자가 소비자로부터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한편의 영화와도 같았던 그의 지난 삶과 함께, 애플의 혁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희와 감동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IT 산업 전체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거대한 스마트 모바일 혁명의 원천이 되었다. 일찍이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잡스의 애플은 아이폰으로 또한번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루어냈고, 앱스토어의 성공으로 모바일 분야의 생태계를 바꾸었다.
요즘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스마트' 또는 `생태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리는 잡스의 애플이 이룬 것과 같은 혁신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길 바라며, 그로 인해 우리가 세계 IT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이대로라면 결코 우리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잡스에 버금가는 천재가 우리나라에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희박하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우리나라에서 IT의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혁신'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잡스의 애플이 이룬 혁신과 그 결과로 형성된 IT 생태계의 실체를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지만, 그 실체가 아직까지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태의연한 생각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의 테두리를 깨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글로벌 IT 생태계의 모습은 애플이 이룬 혁신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이러한 생태계를 잡스가 설계한 것은 아니었다. 잡스는 그저 아직 세상에 없는 멋진 기기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어느 기업이든 혁신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겠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지 싫어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신제품에 기업의 명운을 거는 것은 너무 두렵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이미 성공한 모델을 가장 빨리 뒤쫓아 가는 전략을 택한다. 세계의 모든 기업들에게 혁신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일이고,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며, 경쟁자를 타도하여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따라서 다른 사업자에게 이익배분의 기회를 넘겨주거나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잡스의 애플 또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은 보다 원대한 비전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성을 가진다. 즉, 애플은 좋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사업의 성공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했다.
애플 또한 크고 작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세계 IT 시장이 여러 차례 큰 변화를 겪는 동안 부침을 거듭해 왔지만 단기적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와 오늘에 이르렀다. 해외에서 수많은 다른 몽상가들이 잡스와 비슷한 꿈을 꾸고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꿈을 꾼다고 다 혁신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꿀 수 없는 곳에서 혁신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기득권과 지배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현재의 이익에 집착하려 하는 생각의 테두리 내에서 추구하는 혁신. 이것이 우리가 아마 안 될 거라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다.
글로벌 IT 생태계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꿈이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까지 우리의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너무나도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혁신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혁신도 없다. 만약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위험 때문에 계속 이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아쉽지만 혁신은 포기하고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0월 19일(수,22면) [디지털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