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촉발된 현행 글로벌 IT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시기는 종종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로 비유되기도 한다. 주요 IT기업들이 글로벌 IT시장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이 마치 춘추전국 시대 제후국들 간의 경쟁처럼 역동적이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빗댄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는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서민의 삶은 피폐화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인들의 철학과 사상의 근본이 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탄생을 가져왔다.춘추전국 시대는 기원전 221년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통일을 달성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사상은 어떤 사상일까? 한비자(韓非子)로 대표되는 법가(法家)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진(秦) 시황제로 하여금 부국강병과 천하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뤄내는 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유가ㆍ묵가ㆍ도가 등 기존의 학파들이 과거의 이상적인 시대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복고적인 경향을 보인 반면,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둔 대응 방식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법가적 `현실 인식'은 2200년을 넘어 현행 IT 춘추전국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남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남이 일찍 죽기를 바란다. 수레 만드는 사람은 어질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부귀해져야 수레를 사고, 사람이 죽어야 관이 팔리기 때문이다"(한비자 비내편).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개인과 조직의 행동을 `이(利)'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구글은 자신이 무료로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 제조업체들이 단말기를 제조하여 수익을 내기를 바란다.
반면 애플은 경쟁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전방위적 특허 소송을 제기하여 이들의 제품 판매를 저지하고 있다. 구글은 어질고 애플은 악하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이 지점에서 구글의 유명한 모토,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가 오버랩 된다.
법가적인 현실 인식에 따르면 이들의 전략은 철저하게 각자의 `이(利)'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폰의 보급이 확대되어야 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자신의 서비스를 통해 광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하드웨어 판매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기 때문에 경쟁 제품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특허 소송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전략에는 좋고 나쁜 선과 악의 가치기준은 없다. 다만, 각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주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기업이 `이익'을 내는 조건과 상황이 변화하면 전략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달라지면 사정도 달라지며, 사정이 달라지면 방책도 달라진다(世異則事異, 事異則備變)"(한비자 오두편). 구글의 안드로이드 OS가 출시 3년 만에 지난 3분기 기준으로 52.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다. 오픈 생태계의 경이적인 성과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구글의 영향력 확대가 가져올 수 있는 전략 변화에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특허 확보를 통한 안드로이드 진영의 보호라는 측면도 있지만, 구글이 모토로라의 하드웨어 역량을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 구글 전략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밭일을 하다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은 토끼를 얻게 된 어느 농부가 그 다음날부터 일은 하지 않고 토끼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한비자의 수주대토(守株待兎) 우화. 이 우화는 변화하는 현실을 과거의 인식 틀로 이해하고 대응하려는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IT 춘추전국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 인식과 대응은 과거에 얽매어 있지는 않은가를 점검해볼 일이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1월 22일(화, 22면) [디지털 산책]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