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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이 '규제' 앞선다

  • 작성자주재욱  부연구위원
  • 소속미래융합연구실
  • 등록일 2012.01.25

인터넷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의견을 피력하거나, 거래를 하거나, 디지털 창작물을 가공 또는 재배포할 때 혹시 내가 하는 행위가 위법인지 아닌지를 고민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규제 당국으로부터 어떤 제재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과거에 인터넷이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자유가 인터넷의 본질적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인터넷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 국가가 있고 법이 있듯 인터넷 세계에 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인터넷이 모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현실세계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최근 선진국에서 발견되고 있는 인터넷 규제의 사례는 주로 지적 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2009년 프랑스에서 논란 끝에 도입된 아도피(HADOPI)법은 디지털 콘텐츠의 창작자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으며,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인터넷 이용자에게 사전 경고와 법원 판결을 거쳐 일정 기간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HADOPI법의 시행을 앞두고 기본권 침해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였고(현재 인터넷 접근은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인간의 기본권으로 권고되고 있다.), 이로 인해 몇 차례 개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작년 10월 미 의회에서 발의된 SOPA(Stop Online Piracy Act, 온라인저작권침해금지법안), 즉 온라인 해적행위 방지 법안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SOPA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하는 웹사이트에 대해 사이트 접근을 차단하거나, 검색 목록에서 제외시키고 결제 서비스 기능까지 차단하는 등 웹사이트를 사실상 폐쇄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규제 수단을 포함하고 있다. 콘텐츠에 대한 불법 유통으로 피해를 입고 있던 음악·영화 업계는 이 법안을 찬성하고 있으나, 게임 업계와 대다수 인터넷 이용자들은 인터넷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권력기구에 의한 인터넷 검열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에 나섰다. 위키피디아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는 SOPA에 대한 항의 표시로 위키피디아의 영문판 사이트를 일시적으로 닫기로 했다. 미 의회에 상정된 SOPA와 지적재산권보호법안(PIPA)에 대해 구글과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업계와 네티즌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이들 법안을 지지하던 의원 18명이 최근 지지를 철회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스위스 정부는 자국 내의 인터넷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통해, 현재 음악이나 영화 등 디지털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현재의 저작권법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들의 엔터테인먼트 지출이 다운로드 행위와 상관없이 일정하며, 다운로드를 통해 절감된 비용은 콘서트나 다른 유료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 다른 분야에 지출되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에 손실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이는 언제나 불법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결국 새로운 모델을 받아들인 쪽은 시장에서 승자가 되고,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에 집착하여 신기술을 '불법화'하려 한 쪽은 패자가 되었다"고 기술함으로써 기술의 변화에 업계 스스로가 적응해 나갈 것을 주문함과 동시에 기술의 진보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제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그것이 좋으냐 나쁘냐와 상관없이 언젠가 미래에는 결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된다. 프랑스가 도입하였고 미국이 추진하려 한 규제 법안들은 과연 기술의 진보에 대항하여 실효적 규제로 작동할 수 있게 될까. 소비자가 오직 소비만 하는 존재라면 혁신이 지고의 선이 될 수 있으나, 기술의 변혁기에는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많은 아까운 기업들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죄(?)로 죽게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규제 틀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장의 질서를 예측하고, 변화의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가운데 혁신의 파도를 타고 넘는 일은 정책연구자에게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숙제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월 25일(수,22면) [디지털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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