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정도에 걸쳐 관찰되고 있는 글로벌 IT업계의 지각변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글로벌 IT업계의 최장수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노키아(147년)와 닌텐도(123년)가 창립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80년대 IT업계를 이끌었던 소니, 아이폰 이전에 스마트폰의 대명사였던 블랙베리 제조업체 림(RIM)도 누적되는 적자와 급격한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CEO 교체, 대규모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한때 웹의 강자로 군림했던 야후도 사업상의 어려움으로 매각설이 나돌고 있다. PC시대의 맹주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OS시장에서 2%에 미치지 못하는 시장점유율에 머무르고 있다.

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의 부침(浮沈)은 익숙한 현상이지만, 최근 IT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지각변동은 그 범위와 강도에 있어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앤드류 그로브(Andrew Grove) 인텔 전 회장의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 개념은 글로벌 IT업계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시각을 제시한다. 인텔의 CEO를 역임(1987년~1999년)했던 그로브는 1980년대 중반, 인텔의 핵심 사업영역을 메모리 반도체에서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전환하는 고통스러운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냄으로써 인텔을 세계적 선두기업으로 변모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략적 변곡점은 기업의 사업영역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는 특정 환경 변화의 영향력이 평상시의 10배에 이를 만큼 크게 나타난다. 그로브는 `Only the paranoid survive'라는 저서(국내에서는 `승자의 법칙'으로 출간됨)에서 전략적 변곡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0배 변화에 직면한 비즈니스를 경영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기존에 사용했던 경영방식에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통제능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결국 산업계에 새로운 균형관계가 대두되고, 어떤 기업은 더욱 강건해지고, 어떤 기업은 더욱 쇠약해지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기업이 전략적 변곡점과 같은 큰 변화에 대응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전략적 변곡점이 산업 전체를 휩쓸고 지날 때 과거 산업구조에서 성공적이었던 기업일수록 그 기업은 변화로 인해 더 큰 위협을 받게 되고 그 변화에 순응하는 데 더 주저하게 된다. … 전략적 변곡점을 통과하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당신 회사의 근본적인 변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형이 그토록 힘든 이유는 회사의 모든 부분이 과거 모습의 누적으로 형태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기업일수록 자신을 오늘의 위치에 있게 한 사업방식과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큰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 사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변화에 대한 대응은, 회사의 미래방향에 대한 의사결정, 그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조직원을 전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통노력, 자원의 재배치 등 단순해보이지만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일련의 전략 조치들을 필요로 한다.

글로벌 IT업계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기업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지칭되는 큰 변화의 시기에는 많은 기업들이 회복이 어려운 치명적인 타격을 입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현 상황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글로벌 경제침체는 기업이 전략적 변곡점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필요로 되는 시간과 자원을 빠른 속도로 소진시키는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 수상한 시절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2월 16일(목, 22면) [디지털 산책]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