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트루맛쇼라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트루맛쇼는 지상파방송사들이 저마다 쏟아내고 있는 일명 ‘맛집’ 프로그램들에 대한 조롱과 독설을 내용으로 하는 꽤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천편일률적인 감탄사, 며느리만 모르고 우리 모두 다 아는 주인장만의 비법, 방송을 위해 처음 만들고 방송이 끝나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수많은 특식들, 자신의 단골집에서 자주 먹는다는 음식 이름을 외우고 있는 스타들의 안쓰러운 모습은 실소를 넘어 분노를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영화는 맛집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난 방송사의 일그러진 행태를 ‘조작과 기만(Frode & Inganno)’이라고 일갈하며 우리에게 씁쓸한 여운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더욱 씁쓸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런 방송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것은 시청자의 낮은 수준에 기인한다는 영화 속 어느 맛집 칼럼니스트의 따끔한 충고 때문이었다. 어떤 식당이 텔레비전에서 맛집으로 한 번 소개되기만 하면 바로 다음날 그 식당은 줄지어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렇게 트루맛쇼가 조심스럽게 진단한 시청자의 낮은 수준이라는 현실은 작년에 시청률과 수용자평가지수를 연계하여 분석한 바 있는 나의 연구보고서의 결과와 상당히 유사했다. 그 연구결과를 잠시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선호나 평가를 측정할 수 있는 두 가지 대표적인 데이터로 시청률과 수용자평가지수를 들 수 있다. 흔히 시청률이라 함은 프로그램 시청률을 의미하는 것으로 텔레비전 보유세대 중 특정 시간에 특정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 TV가구 수의 백분율을 말한다. 즉, A프로그램의 시청률이 30%라는 것은 TV 수상기가 있는 열 가구 중 세 가구는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수용자평가지수는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수용자의 만족도와 품질평가를 합산한 평균점수로이다. 이는 시청자가 자신이 시청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는지, 또는 질적으로 얼마나 우수하다고 생각하는지를 각각 0점에서 10점까지 응답하도록 되어있다.
시청률이 시청자가 특정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였는가와 관계없이 실제로 시청한 시간량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실제 선호도라면, 수용자평가지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난 후 얼마나 만족했고, 질적으로 얼마나 우수하다고 생각했는지를 평가하는 일종의 이론적 선호도라고 할 수 있다. 시청자로부터 산출되는 두 개의 서로 상이한 내용의 데이터를 통해 나는 시청자의 실제적 선호도와 이론적 선호도 간의 관계를 여섯 개의 장르(뉴스, 드라마, 생활정보, 리얼다큐, 시사토론, 오락)를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씁쓸하게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시청자의 실제 선호도를 보여주는 시청률은 드라마 장르가 가장 높았으며, 오락, 생활정보, 시사토론, 뉴스, 리얼다큐의 순서로 나타났다. 반면, 수용자평가지수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리얼다큐, 2위는 시사토론 장르였으며, 다음으로 생활정보, 뉴스, 오락, 드라마의 순서로 나타났다. 즉, 높은 시청률을 보인 드라마와 오락 장르는 수용자평가지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으며, 수용자평가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리얼다큐와 시사토론 장르는 실제로는 시청자들이 시청하지 않는 대표적 장르라는 말이다. 이를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질적으로 우수하지 못하다고 평가한 수준 낮은 프로그램들을 더욱 많이 시청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트루맛쇼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영화 속에서 들려왔던 방송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고전적인 개념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파의 가치, 수신료, 광고, 시청률, 공익성, 미디어의 현실구성 등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편성하는 공급자로서 방송사의 책임과 역할은 여전히 지금도 중요한 숙제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나는 우리의 방송문화를 보다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주체가 바로 우리 시청자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트루맛쇼, 여러모로 참 유익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