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구호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리는 미래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다. 절대 권력자인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양방향 송수신기를 통해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감시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국가의 선전 영상과 소식을 전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숫자를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다시 고치는 일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다. 조작과 거짓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변화시켜 보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권력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런 암울한 미래를 반길 리 없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에서 톰 크루즈를 내세워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범죄를 예측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을 선 보인다. 프리크라임 특수경찰은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는 물론이고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예측해서 미래의 범죄자를 체포한다.
시민들이 범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이런 미래가 과연 가능할까?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빅데이터(Big Data)’ 환경을 생각해 보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빅데이터(Big Data)란 과거 아날로그 환경에서 생성되던 데이터에 비하면 그 규모가 방대하고, 생성 주기도 짧고, 형태도 수치 데이터뿐 아니라 문자와 영상 데이터를 포함하는 대규모 데이터를 말한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수집하고 저장하기도 어렵고, 검색과 분석을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하루 동안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생각해 보면 이런 환경이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으로 밤새 도착한 메일을 확인하고 간단한 사항은 메신저로 처리한다. 출근길에 신용카드로 모닝커피를 결제하고 지하철과 택시 요금도 지불한다. 회사에서는 출입카드가 구내식당에서 뭘 먹었는지를 포함해서 내가 하루 종일 다닌 경로를 빠짐없이 기록한다. 혹시 기록에서 빠지는 게 있을까봐 CCTV도 내 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업무를 하는 동안 처리한 전자결재와 인터넷 서핑도 PC에 고스란히 담긴다. 퇴근길에 대형 마트에라도 들린다면 내 일주일치 식단이 통째로 기록된다. 집으로 돌아와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TV는 내가 즐기는 방송프로그램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만약 당신이 패이스북이나 트위터 이용자라면 최근 생각의 변화와 정치성향은 물론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정보를 모은다면 여름휴가 여행지로 어떤 곳을 좋아할지,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할지를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빅데이터 환경에서는 개인 데이터(정보)를 악용한 범죄도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자신과 가족의 정보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피싱 전화가 걸려오는 것쯤은 늘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 많은 정보를 자신이 자발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개인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당신이 집근처 마트를 지나갈 때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지지 않았나요? 1+1 행사를 놓치지 마세요”라는 문자가 휴대폰으로 날아온다고 해서 놀랄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위치정보와 당신의 구매주기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은 마케팅활동이기 때문이다. 즐겨보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개개인이 선호하는 배우로 바꾸고 스토리도 고쳐서 개인 단말기에 보내는 일대 일 맞춤형 방송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와 공공부문도 빅데이터가 몰고 올 혁신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싱가포르 정부는 재난방재와 테러감지, 전염병 확산과 같은 위험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반 위험관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린 미래 모습이 현실로 조금씩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빅데이터 환경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기업 못지않게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 정부는 정부데이터를 공개하는 전용 사이트(http://data.gov.uk, http://www.data.gov)를 만들어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소통과 공유, 협업(croudsourcing)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더스 헉슬리는 미래소설의 고전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부가 개입해서 계급과 미래를 정하고 무제한의 쾌락을 제공하는 사회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이런 자유 없는 안정된 사회를 고뇌하는 주인공도 등장한다. 빅데이터 혁명의 시대에 정부와 시민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어쩌면 80년 전 그의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