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중립성·망중립성! 방송통신분야에서 ‘중립(neutral)’이라는 단어를 통해 의도하고자 하는 가치가 표상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중립의 개념에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의미와 기술중립·망중립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바가 서로 부합하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중립(中立)이란, “객관적이고자 노력하는 행위 또는 입장”을 의미한다. 즉,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처신(處身)”을 뜻하는 것이다. 이 개념 속에 등장하는 주체는 최소한 3명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a라는 입장을 가지는 A, 이와는 달리 b라고 주장하는 B, 그리고 A와 B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a 주장과 b 주장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할 C라는 주체. 여기에서 중립은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당사자 이외의 제3자인 C라는 자가 전제되어 있다. ‘객관·공정’ 역시 a를 주장하는 자와 b를 주장하는 자만이 존재하면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자들 사이에서 다른 타방의 주장은 객관적일 리 없고 공정할 수도 없다.
이러한 중립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러운 분야는 재판(裁判)이다. 재판관의 중립(Neutralität des Richters)은 당사자 어느 한 쪽(A 또는 B)에 치우치지 않는 제3자인 재판관(C)이 재판과정에서 주장된 바를 모두 ‘고려’하여 ‘판결’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의 대상이 재판관 자신에 해당하는 사항이어서 재판관 스스로가 소송 당사자이거나(C=A 또는 C=B), 재판에서의 일방 당사자가 재판관의 친인척일 경우(C≒A 또는 C≒B), ‘중립적’인 판결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도 속에서는 중립이라는 개념이 전제하는 A, B, C라는 최소한 세 명의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재판관은 당연히 당해 재판에서 제외된다.
망중립성 원칙에서도 ‘중립’이라는 가치의 준수가 요구된다. 어떠한 콘텐츠 든지 인터넷 망에서는 중립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망사업자가 중립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망에서 전달되는 콘텐츠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즉, 이러한 중립의무(?)를 지켜야 하는 망사업자가 특정 콘텐츠에 대한 임의의 주관적인 평가를 하거나, 한편으로 치우쳐 불공정한 판단을 함으로써 콘텐츠를 차별적으로 전송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보편적인 중립개념, 특히 재판에서의 중립과 비교했을 때 아주 중요한 개념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재판에서의 재판관 역할을 망사업자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망사업자는 어떠한 콘텐츠를 전송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바로 직접적인 당사자 이거나 이해관계자이다. 콘텐츠에 따라 망에 부하가 걸려 ‘망품질의 훼손이 우려’될 경우, 이를 유발한 콘텐츠에 대해 망사업자로 하여금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을 요구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망사업자(C)에게 객관적으로 노력하라거나,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중립의 본질에 반한다. 또한, 특정 콘텐츠는 자신의 ‘사업영역과 중첩’되기 때문에 망사업자는 이를 차별하고자 하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망중립성에서 가장 문제되는 이슈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앱을 통한 음성서비스인 mVoIP가 망사업자의 전통적인 사업수익 영역과 중첩되는 예가 대표적이다.
법학을 전공한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가 생각한 바를 쉽게 펼쳐내는 생각의 지도를 잘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어의 문제이다. 특히 법학에서도 보편적인 개념의 범주를 넘어선 용어의 사용이 빈번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에서 모두를 쉽게 설득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종적을 감추는 경우는 다반사다. 이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방송통신 분야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망중립성 논쟁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꽤 오랫동안 논의되었지만, 망중립성의 보편적인 개념정립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중립이라는 개념의 보편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망중립성이라는 새로운 개념 속으로 모든 사항을 해소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