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이 조만간 세상을 먹어치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바로 "4차 산업혁명"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끝에 가서 "낚였다"는 기분이 들까봐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인공지능이 세상에 미칠 영향은 지금 알 수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는 결코 혁명적이지 않을 것이다.
작년 10월, 당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백악관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ouncil)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위한 준비(Preparing for the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걸 카카오 정책지원팀이 고맙게도 한국어로 전문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미국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관한 연구는 특히 최근들어 IBM, 구글 등 IT 기업과 대학 등 민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수행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관심이 큰 주제이니만큼 미국 정부는 정부 입장에서 인공지능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고민하고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인공지능 연구는 미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는 상황이고, 사회적 논의 또한 클라우스 슈밥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 연구가 가장 앞서 있는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정책보고서가 나왔으니 우리도 당연히 그 내용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서론에서 인공지능의 간단한 역사, 인공지능의 정의, 인공지능의 현황을 서술하였고, 본론에서는 공공재 및 연방정부 내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인공지능 규제, 연구 인력, 경제에 미치는 영향, 공정성, 안전, 거버넌스, 글로벌 관심사와 보안(안보)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의 논의 내용을 서술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결론과 함께 앞으로 다양한 주체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스물 세 개의 권고안을 제시하였다. 보고서의 권고안을 보면 백악관과 위원회가 인공지능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보고서는 첫째,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민간, 공공기관은 이를 사회적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하고, 활용 시 투명성을 보장해야 하며, 둘째, 정부는 인공지능의 개방화, 표준화 및 전문인력 양성, 재배치를 위해 노력하고, 기술발전 현황을 모니터링을 하며, 셋째, 교육기관은 데이터 사이언스, 머신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 분야 뿐만 아니라 윤리, 보안, 프라이버시, 안전 등 사회, 정책 이슈에 관한 주제들 또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조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인공지능을 대하는 방식과 비교하여 인상 깊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시장과 민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부는 기본적인 부분에 충실하고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자율이동차 교통규제 등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문제에 한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20년 안에 출현할 가능성이 없는 초지능 범용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현재의 정책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되며, 이미 지금 존재하고 있는 덜 심각한 위험들을 해결함으로써 장기적인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의 방향"이라 밝힌 위원회의 평가처럼 미국 정부는 현실적이면서도 조급하지 않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연구는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라는 논문을 발표한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실상 컴퓨터의 역사와 함께 한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면서 부침을 거듭했지만 인공지능이 최근 들어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은 디지털 데이터의 폭증과 컴퓨터 성능의 향상을 바탕으로 기계학습과 특히 딥러닝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 자율이동차나 안면인식 등 대중과 친숙한 분야에서 가까운 미래에 괜찮은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실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학습이란, 인공지능 연구의 한 분야로 대용량 데이터를 이용한 반복된 학습을 통해 컴퓨터 스스로 규칙을 발견하도록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 과거에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전문가 시스템이었다. 전문가 시스템이란 인간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규칙들을 대량으로 컴퓨터에 입력함으로써 인간처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한 방법인데, 전문가 시스템은 인간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지식까지만 컴퓨터가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구글 딥마인드가 딥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발한 알파고가 세계최강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긴 시합에서 해설자들도 알파고의 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딥러닝은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바둑을 기막히게 잘 두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에 관심없는 나한테 당장 도움이 될 것은 없겠지만 딥러닝 기술은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인공지능은 언젠가 보고서 작성과 수시과제를 해야 하는 필자의 수고를 상당 부분 덜어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내가 없어도 나보다 더 그럴듯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가지 딥러닝의 성과가 우리를 흥분시키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인공지능 때문에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식의 우려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거나 늘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율이동 자동차는 아직 단 한대도 지구상에서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팔린 적이 없으며,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조차도 아직 제대로 된 교통규제가 확립되지 않았다. 새로운 서비스들이 세상에 등장할 때마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그것들의 시장성과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했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은 기술이나 서비스는 앞으로 얼마나 세상을 바꿀 것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한 가지 더, 만약 우리가 인공지능이 바꿀 세상을 미리 안다면 결코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산업혁명이란 이름은 훗날 역사가들이 붙인 것이다.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건 그 이전과 이후가 극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지만 화가 난 프랑스 국민들이 하루 아침에 바스띠유 감옥을 습격해서 다 엎어 버린 것 같은 혁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기가 증기기관을 대체한 2차 산업혁명이 발생한 시기는 대략 1870년에서 1900년 사이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증기 터빈 시절에 동력을 전달받기 위해 환형으로 배치된 공장 생산라인의 모양이 선형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가 지나서였다고 한다. 기술이 사람의 인식과 관행을 바꾸는 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성장 이론으로 1987년 노벨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우는 한 기고문에서 "컴퓨터 시대는 도처에서 확인되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미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약 2.6%로 컴퓨터가 없었던 1947년부터 1983년 사이의 기간 평균인 2.8%보다 오히려 떨어진다.(출처: 강인규(2017)) 1980년대 말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는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생산성 향상의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인공지능이 빼앗아 갈 일자리를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인공지능의 장기적 효과에 대한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는 활발할수록 좋은 거겠지만 명백한 증거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선제적 대응은 오히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획기적인 사회안전망 확충과 노동정책의 진보로 이어진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겠으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의는 잘못하면 신기술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만 확산될 수 있고, 이는 국가적으로 가장 해로운 시나리오다. 기술의 발전양상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되 현실로 다가온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보고서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참고문헌(2017.2.19 발췌)
강인규, "신앙이 된 4차 산업혁명, 여러분 믿습니까?" 오마이뉴스(2017.1.31)
나무위키, "인공지능"(2017.2.17)
카카오정책지원팀, "미 백악관 '인공지능의 미래를 위한 준비' 보고서", 브런치 베타(2016.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