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공중 화장실은 매우 더럽고, 그 불결함만큼이나 살벌한 문구들이 화장실을 도배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주로 ‘~하지 마라’, ‘~하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등의 조금은 섬찟한 것이 주류였다.
이러한 두 가지 화장실의 관리 방식은 사람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방식과 잇닿아 있다. 사람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해주는 긍정적인 관리의 방식(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Y이론’) 또는 좋지 않은 환경에 내버려두면서 인간은 관리, 감독, 통제해서 부정적인 짓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것(경영학의 ‘X이론’)이 그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성악설’과 ‘성선설’의 논쟁이 있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 그래서 엄격한 법 적용을 강조한 그의 관리철학은 백성을 원래 선하게 태어나 기본적으로 선하다며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의 관리철학과 오랜 논란을 빚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맹자 역시 순자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맹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론 악하지만 “선하다 선하다”하면 선하게 행동하는 존재라는 인간관리의 기본적인 노하우를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맹자는 자신의 기본적인 신념과는 달리 인간을 긍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선하다라고 말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사회심리학을 통해 밝혀진 ‘깨진 창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작용하는 규범에 걸맞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곳에서 어지럽히는 행동을 보이며, 잘 정돈된 환경에서는 그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즉, 깨진 창문이 방치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안 깨진 창문도 깨고, 건물에 낙서를 하며, 일반적으로 규범에 저촉되는 행위를 벌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문을 깨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지지 않은 창문으로 잘 관리하는 것 즉, 긍정적인 환경과 대우 가운데 사람을 두는 것일 것이다.
사람의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이 이렇듯 어렵지 않은 관리 철학에 의해서 갈릴찐대 이 시대 이 나라의 위정자와 지도층 인사들은 대부분 사람들을 ‘악’으로 몰고 통제, 제재하는 방식을 쉽사리 선택한다. 나 이외엔 다 적이고, 악하며 따라서 무엇을 해줘도 결국은 내가 손해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그들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고, 당신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그렇게 대한다면 사람들은 그래도 부정적인 행동을 해댈까?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 유쾌하지 않은 보도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점점 사람의 가능성을 믿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되고, 폐쇄성이 되고, 결국은 나 자신의 고독이 된다. 그래서 이 시대, 이 나라를 사는 사람들은 외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