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No Image

정보재와 후생경제학

  • 작성자손상영  연구위원
  • 소속디지털미래연구실
  • 등록일 2005.06.27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디지털 경제를 논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분배적 정의(distributional justice)를 주장하고 있다. 두 현상을 합치면 ‘디지털 경제에서의 분배적 정의’라는 매우 생소한 이슈가 된다. 디지털 경제의 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 디지털 경제를 보면 여러 가지 경제 활동 중 자연히 소비 활동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요즘의 소비생활이 과거의 소비생활과 다른 점 중 주목할 만한 사실은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정보재(information good)의 소비가 전체 소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디지털 경제의 이러한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후생경제학적 논의를 해 보기로 한다.

미시경제학자가 디지털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할 때, 대부분의 경우 정보재의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정보재의 여러 가지 특성 중에서도 공공재적 성격이 연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정보재, 예컨대 수많은 상업용 소프트웨어들은 공공재처럼 공익을 목적으로 생산된 재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재의 특징으로는 비배제성(non-excludability)과 비경합성(non-rivalry)을 들 수 있다. 비배제성을 가지는 재화란 한 소비자가 그 재화를 소비할 때, 다른 소비자들로 하여금 동일한 재화를 소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재화다. 비경합성을 가지는 재화란 한 소비자가 그 재화를 소비할 때,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추가적인 비용 없이 그 재화를 제공할 수 있는 재화다. 정보재는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 특성 중 후자, 즉 비경합성을 가진다.1) 그러나, 정보재가 비경합성을 가지는 이유는 대표적인 공공재의 예로 인용되는 국방, 공원 등과는 달리 정보재의 무한복제 가능성에 있다. 즉, 정보재는 거의 0에 가까운 비용으로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방, 공원 등은 엄밀하게 말하면 완벽한 비경합적 재화라고 할 수는 없다. 예컨대 인구가 급속히 늘어난다면 국방이나 공원으로부터 얻는 서비스의 양과 질이 저하될 것이므로 이들 재화가 비경합성을 완벽히 만족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재는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복제하여 나누어주면 되므로 비경합성을 완벽히 만족한다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정보재의 무한복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정보재와 일반재가 공존하는 간단한 교환경제를 모형화 해보고, 기존의 고전적인 교환경제(classical exchange economy) 환경에서의 후생경제학적 개념 및 이와 관련된 사실들이 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과연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논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디지털 경제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규범경제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어떤 것들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두 명의 소비자와 두 가지 재화가 있는 교환경제를 상정하자. 재화 1은 완벽하게 가분적인(perfectly divisible) 일반적인 재화이고 재화 2는 불가분적인(indivisible) 그러나 0의 비용으로 무한히 복제가능한(infinitely replicable) 정보재라고 하자. 여기서는 정보재의 복제와 생산을 엄격히 구분한다. 정보재의 생산은 노동, 자본, 기술 등 여러 가지 생산요소를 투입하여 정보재를 개발해내는 경제활동을 의미하며, 정보재의 복제는 단순히 기존의 정보재 프로그램을 복제도구를 이용하여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행위로서 본고에서 상정하고 있는 경제에서는 정보재의 생산활동은 없으나 정보재의 복제는 허용된다. 단, 정보재에 대한 복제권은 정보재의 소유자에게만 있다고 하자. 따라서 이 교환경제에서는 정보재를 가진 소비자가 자신의 정보재를 복제하여 상대방이 소유한 일반재의 일부와 교환할 수 있다.

소비자 1은 만큼의 재화 1을 0 단위의 재화 2를, 소비자 2는 만큼의 재화 1을 1 단위의 재화 2를 각각 가지고 교환에 임한다고 하자. 각 소비자의 효용은 재화 1을 소비할 때는 항상 증가하지만, 재화 2에 대해서는 0 단위에서 1 단위로 소비가 늘어날 때는 각 소비자의 효용이 증가하지만 그 이상의 소비에 대해서는 효용의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자. 즉, 한 소비자가 동일한 정보재의 복제품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을 때 누리는 효용은 한 개를 보유하고 있을 때 누리는 효용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제에서 소비자 2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재를 두 번 이상 복제해도 자신에게 추가적인 효용을 주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2는 최대 한번만 복제한다고 가정하자. 위의 모형은 한 개의 불가분한 재화를 화폐와 거래하는 단순한 matching 모형과 유사하다.2) 다만, 여기서는 거래의 대상이 그 재화 자체가 아니라 그 재화의 복제품이라는 것이 기존 matching 모형과의 차이점이다.

우선 후생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리(axiom)인 파레토 최적성(Pareto optimality)을 만족하는 배분(allocation)들을 찾아보기로 한다.3) 두 소비자가 재화 1을 어떻게 나누어 쓰든지, 소비자 2가 재화 2를 복제하여 두 소비자가 각각 재화 2를 1 단위씩 소비한다면 소비자 2만 재화 2를 소비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소비자 1의 효용은 증가하게 된다. 또한 재화 1의 소비에 대해서 두 소비자의 효용은 항상 증가하므로 각 소비자가 재화 2를 각각 1 단위씩 소비하기만 하면, 재화 1을 두 소비자가 어떻게 나누든지 모두 파레토 최적배분이 된다.

이제 을 소비자 1이 (, 0)와 (, 1)을 무차별하게 선호하는 재화 1의 양이라고 하자. 그러면 소비자 1은 재화 2를 한 단위 소비하면서 재화 1은 이상을 소비하는 모든 소비 꾸러미(consumption bundle)를 자신에게 주어진 보유자원(endowment) (, 0) 보다 선호한다. 소비자 2는 재화 2를 한 단위 소비하면서 재화 1은 이상을 소비하는 모든 소비 꾸러미를 자신에게 주어진 보유자원 (, 0) 보다 선호한다. 따라서 두 소비자가 재화 2를 각각 한 단위씩 소비하면서 소비자 1에게 재화 1을 최소한 만큼, 최대한 만큼 나누어 주는 모든 배분은 IR(Individually Rational) 배분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배분들의 집합이 IR solution의 결과(outcome)가 된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IR 배분이 왈라스 균형(Walrasian equilibrium)이라는 것이다. 즉, 소비자 1은- 이하의 가격만 지불할 수 있다면 소비자 2로부터 재화 2를 한 단위 구입하고자 할 것이며 소비자 2는 0 이상의 가격만 받으면 재화 2를 복제하여 소비자 1에게 팔고자 할 것이다.
이제 주어진 보유자원에 대한 사적인 소유권이 없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즉, 두 소비자가 재화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획자(social planner)가 사회적 부존자원을 적절히 두 소비자에게 나누어 주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기서는 기존의 후생경제학에서 파레토 최적성 이외에 공정성 개념으로 흔히 제시되는 No envy 개념을 도입해 보기로 한다. envy-free 배분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몫 보다 남의 몫을 더 선호하지 않는 배분이다. 고전적인 교환경제 환경에서 파레토 최적성과 No envy의 두 공리를 모두 만족시키는 solution으로는 사회 전체의 보유자원을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나누어 주었을 때의 왈라스 solution (Walrasian solution from equal division)을 들 수 있다.(Varian (1974))

우리의 디지털 경제의 경우는 어떻게 되나? 우선 재화 2의 복제권은 사회적 계획자가 가지게 된다. 사회 전체의 보유자원을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나누어 주는 것은 소비자 1과 2에게 각각 재화 1의 총량의 반을 주고, 재화 2는 각각 한 단위씩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보유자원이 균등 분배되면 아무도 재화 2에 대한 추가적인 수요가 없으므로 재화 2의 가격은 0이 되고 이 가격이 왈라스 균형이 된다. 즉, 보유자원의 균등배분 자체가 왈라스 균형배분이다. 따라서 고전적 교환경제 환경에서 성립하는 Varian (1974)의 명제가 우리의 디지털 경제에서도 성립하게 된다.

고전적 교환경제 환경에서 왈라스 solution의 약점은 사회적 계획자가 소비자들의 선호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정확한 해의 결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선호란 매우 사적인 정보(private information)이므로 소비자들은 자신의 선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거짓으로 사회적 계획자에게 보고할 수가 있다. 즉, solution의 결과를 거짓 선호를 보여 줌으로써 조작(manipulation through misrepresenting preferences)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는 보유자원의 균등배분 자체가 왈라스 균형배분이므로 왈라스 solution의 결과를 구하기 위해 사회적 계획자가 소비자들의 선호를 알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부존자원의 균등배분 하에서의 왈라스 solution은 조작에 대해 면역(immune to manipulation)되어 있는 매우 좋은 특성을 가지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유자원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있는 경우든 그렇지 않은 경우든 시장균형에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배분에서나 정보재는 두 소비자가 동일하게 소비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어떤 경우든 파레토 최적성을 만족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두 소비자가 정보재를 동일하게 소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이론적인 결과와 현실을 비교해 보자. 현실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재산권 강화로 갈수록 소프트웨어 구입이 경제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 간에 정보재 소유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책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고전적인 경제에서 적용되던 파레토 최적성이 디지털 경제에서는 적절한 후생경제학적 개념이 아닌 것인가? 아직 답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디지털 경제 시대에 분배적 정의를 주장하기 전에 디지털 경제에 대한 후생경제학적 연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고는 이와 관련된 초기 연구를 위한 간단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 각주

1) 정보재는 또한 비배제성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해 정보재를 배제적으로 만들기 위한 비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기호 (1999): 4)
2) Roth and Sotomayor (1990)의 제7장 “A simple model of one seller and many buyers"에서 구매자가 한 명인 경우에 해당한다.
3) 한 배분이 파레토 최적배분이면 그 배분에서 다른 어떠한 실행 가능한(feasible) 배분으로 옮겼을 때 적어도 한명의 소비자의 효용은 엄정 감소(strictly decreasing)한다.

참고문헌

윤기호, “정보재의 특징, 판매방식 및 정책이슈,” 정보통신정책 제11권 5호, 1999, pp. 1-17.
Roth, A. E., and Sotomayor M. A., Two-Sided Matching: A Study in Game-Theoretic Modelling and Analysis,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U.K., 1990
Varian, H., "Equity, Envy and Efficiency," Journal of Economic Theory, 9, 63-91

----- 약력 -------------------------------------------

+ 서울대 경제학 학사
+ 서울대 경제학 석사
+ University of Rochester 경제학 박사
+ 1998.02 ~ 2003.02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보사회연구실장
+ 1994.06 ~ 현 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부서대외협력팀
  • 담당자신보람
  • 연락처043-531-4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