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쉘위 댄스'에서 아직까지도 필자에게 인상깊은 장면이 있다.
중년의 주인공이 매일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 어느 날 퇴근길에 그동안 눈여겨보던 댄스학원으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전철문에 닫히는 것을 밀치고 나서는 장면이 그것이다. 필자 역시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러한 `결심'을 하는 날을 매일처럼 꿈꾸고 있기에 그러한 지도 모른다. 나의 지금의 삶과 다른 또 다른 삶에 대한 욕구, 이 욕구는 무엇인가? 근대 이후 분업에 익숙해져 너무나 획일적이고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언가 다른 삶을 찾고자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래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최근 들어 `노마디즘', 즉 유목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17세기 이후 근대를 규정해주던 `정착'의 문화가 그 종말을 곧 고할 것이며, 과거와 같은 `유목'의 문화가 통신과 디지털기술을 배경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유목의 문화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철학자 들뢰즈가 얘기하는 `정체성'에서의 유목주의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나는 항상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 라이프'에서 일본의 샐러리맨이 중국의 여행가이드로 매일 저녁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바로 이런 행위들이 유목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혹자는 자꾸 새로운 자신만 찾다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되어 결국은 더욱 불행해지지 않겠느냐고 비난한다. 오히려 안정적이고 꾸준한 자기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또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지위, 직장 등이 항상 나를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다. 미래에는 자신의 여러 가지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유목적 행위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또 다른 유목주의로는 사회학자 마페졸리가 제시한 `떠남과 방랑'의 유목주의가 있다. 이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도시를 떠나서 내가 모르는 다른 마을과 도시들에서의 삶을 계속해서 찾아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행위,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자신도 모르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마페졸리의 주장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국경이 무너지면서 이 유목적인 행위가 정말이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직장인들까지 고정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공부와 업무를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집을 사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한 직장을 그토록 오래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커리어맨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틈만 나면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들에게 일 자체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인생에서의 활력이다. 활력있는 인생을 위해서는 한 도시, 한 직장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계속 반복한다. 학생들은 배낭하나를 매고 수개월에 걸쳐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으로 떠도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를 가는 데 있어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 곳이 아니고 일단 출발하고 나면 지칠 때까지 걸어서 도달하는 장소가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유목행위를 통해 자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1월 28일자(수, 오피니언 23면)[DT 광장]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