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우연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의 이동전화벨이 울렸다. 친구는 `나중에 전화할게'하고는 전화를 바로 끊었다. 내가 있어서 신경을 쓰는구나 싶어서 괜찮으니 통화를 하라고 하자, 미국에서는 전화를 받아도 돈을 내기 때문에 무료통화시간에 전화를 하려고 빨리 끊은 거란다. 그 말을 듣고 `전화를 받는 사람도 돈을 내는구나' 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통신비 인하의 대안 중 하나로 전화를 받는 사람도 통화료의 반을 부담하는 쌍방향요금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발신자만이 통화료를 부담하는 데 익숙한 소비자에게 쌍방향요금제는 `내가 걸지도 않았는데' 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요금 증가로 여겨져 부정적인 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쌍방향요금제에 대한 반대의견이 50%가 넘게 나타난 것이 이를 반영한다. 쌍방향요금제는 과연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전화통화는 일종의 게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철수와 영희 사이의 통화를 예로 들어보자. 게임은 `누가 먼저 전화를 걸 것인가'와 `걸려온 전화를 받을 것인가'의 두 단계로 구성될 수 있다. 통화를 더 원하는 쪽이 철수라면, 철수가 영희에게 전화를 걸 것이고, 영희는 통화가 유용할 것이라 기대하면 전화를 받고 그렇지 않다면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즉, `통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철수와 영희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는 영희가 걸려오는 전화의 유용함을 분명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전화를 받는 영희도 통화료를 부담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받는 전화에도 통화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영희는 철수의 통화가 통화료만큼의 가치가 없다면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철수 또한 자신의 전화가 영희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전화를 거는 데 더 신중해 질 것이다. 즉, 쌍방향요금제 하에서는 수신자와 발신자 모두에게 통화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통화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또, 통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수신자와 발신자 모두 통화로부터 만족을 한 것을 의미하므로 통화료를 함께 부담하는 것도 일견 타당하다.
전화통화의 낭비는 발신자가 자신의 통화가 수신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전화를 걸기 때문에 나타나는 통화외부성(call externality)으로부터 발생한다. 쌍방향요금제는 발신자가 수신자의 효용을 고려하여 통화 결정을 내리게 함으로써 통화외부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우리가 종종 받게 되는 스팸전화들은 쌍방향요금제의 도입으로도 없애기가 쉽지 않다. 스팸전화 발신자들은 수신자의 전화통화에 대한 의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윤을 목적으로 불특정다수의 수신자들에게 전화를 건다. 쌍방향요금제 하에서의 발신요금의 감소로 스팸전화 발신자들은 전화를 더 많이 걸 유인이 있으므로 소비자들은 늘어난 스팸전화에 시달리거나 원하지 않는 통화에 대한 통화료까지 지불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교묘하게 번호를 일반번호인 것처럼 위장한 스팸전화가 발신번호표시서비스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등 스팸전화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전부 받지 않으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괄적인 차단은 중요한 전화를 놓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현재의 발신번호표시서비스만으로 스팸전화를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 쌍방향요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은 수신자가 원하지 않는 광고전화의 차단을 위해 전화번호차단 프로그램(Do-not-call list)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광고전화를 원하지 않는 수신자들이 전화번호를 등록하면 텔레마케터의 통화목록에서 전화번호가 삭제된다. 만약 텔레마케터가 프로그램에 등록된 수신자에게 전화를 걸게 되면 상당한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이동전화 요금체계는 우리나라와 상당히 다르다. 버라이존(Verizon)의 대표적인 요금제는 기본요금 없이 한 달 몇 백분 사용에 일정액을 지불하는 형태이고, 발신번호표시서비스, 같은 통신사를 이용하는 사람들간의 통화, 심야통화가 모두 무료이다. 이처럼 미국은 이동전화를 적절히 이용한다면 통화요금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으므로 평균 통화량이 오히려 우리나라 보다 많다.
관점을 `받는 전화에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거는 전화통화료의 감소'로 달리해보면, 쌍방향요금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꼭 필요한 통화에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요금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쌍방향요금제는 통신비의 인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통화를 감소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되는 것이 옳으며, 수신자가 원하지 않는 전화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이 우선시 될 필요가 있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월 30일자(수,26면) [오피니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