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누구나 갖고 있는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꼭 아이들에게 “21세기가 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 라고 물어보신다. 아마 대답은 다 비슷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캡슐로 되어 있는 음식, 숙제해주는 로봇 등등. 아마 그 중에 빠지지 않던 대답 중 하나는 텔레파시일 것이다. 21세기가 되면 먼 곳에 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때 말이나 전화가 아닌 텔레파시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대화하게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가 오기에는 보다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설 ‘개미’로 유명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최근 강연에서 ‘천년 후의 인간은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게 진화할 것이다’라고 했으니 좀 더 많이 기다려야 하나보다. 그렇지만 도구를 이용한 유사 텔레파시는 천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뇌파를 이용해 로봇 팔을 조정하는 실험도 성공했다고 하니, 멀리 떨어져 움직이면서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며 전화도 하고, TV도 보고, 인터넷도 하는 현재의 기술이 좀 더 발전되어 접목된다면 조만간 실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주파수 또는 전파라고 부르는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의 이용 덕분이다. 우리에게 전파를 이용한 서비스는 일상생활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파 서비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라디오, TV를 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이동전화,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는 DMB, 와이브로 등 이 모든 서비스들의 기초 자원은 전파이다. 최근에는 심장이식기기와의 무선 통신 등 인간의 몸 안팎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BAN(Body Area Network)까지 전파의 이용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으며 유비쿼터스 사회 실현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파 이용은 국민 생활의 편리성을 향상 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발전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즉 전파는 국민 편익을 증진시키는 다양한 서비스를 무선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서 철광이나 석유와 같은 중요한 천연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에게 주어진 천연자원인 전파에 대해 관리를 잘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 중 하나인 것이다.
전파자원의 관리를 위하여 각국에서는 자국의 실정에 맞는 전파관리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다. 전파 관리 정책은 주파수의 확보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누가 이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주는 전파자원의 분배 및 할당, 그리고 불법 이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사후관리의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전파관리정책의 운용체계는 크게 1)정부의 계획 및 통제 하에 관리하는 방안, 2)시장의 기능에 맡기는 방안, 3)전파 자원을 이용자가 함께 공유하여 사용하는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세 가지 방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으며 하나의 방식이 우월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국가별 상황에 맞추어 세 가지 방식을 혼합하여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계획 및 통제 관리 방식을 기본으로 전파자원을 관리해 왔으며, 점진적으로 국내 상황에 가장 잘 적합하도록 시장기반 방식과 공유 방식을 일부 도입하고 있다. 최근 들어 수요가 집중되어 있는 우수한 품질의 전파대역에 대한 새로운 이용방안을 수립해야 하며 이동통신 및 방송 등의 기술 진화에 대비해야 하는 등 전파정책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어 향후 2-3년간은 국내의 전파정책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국내 상황에 적합한 전파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전파자원의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전파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전파자원의 용도나 기술을 세부적으로 결정하는 체계에서 주파수 이용자에게 좀 더 많은 유연성을 부여하여 결정권을 일부 이양하는 시장중심의 전파관리 체계로 중심축을 이동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시장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시장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변화에 빨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여 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하고 기술을 개발하여 서비스를 보급하던 과거의 모델은 급격한 시장 변화와 기술수명의 단축 등으로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시장이 원하는 성장동력이 제대로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전파정책은 시장경쟁의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파자원을 배분하는데 있어 가급적 많은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해야 하며 특정 사업자에게 쏠림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원을 배분해주는 전파정책은 자원을 활용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를 규제하는 경쟁정책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마지막으로 전파이용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전파를 이용한 새로운 기술 및 서비스들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무분별한 전파자원의 활용은 유해전자파 문제, 개인정보 보호 문제, 디지털 격차 문제 등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항해를 할 때 아무 문제없이 순항을 할 때에는 우리는 물에 대해 고마움만을 느낄 뿐, 만일의 경우 폭풍우가 몰아칠 때 배를 뒤집는 것도 물이라는 사실은 망각하게 된다. 우리가 전파를 이용해 삶의 질을 윤택하게 만드는 이면에는 우리에게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반대급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미리 미리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