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잘 다니지 않아 오래된 기억이기는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새집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전화기를 단자에 연결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정되었던 일처럼 어머니께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사하느라 애쓴다. 일간 한번 가마.” 그 무렵 우리 식구는 누구도 휴대전화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것이 몇 몇 있는데, 그 가운데 우편도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편은 주로 기업의 경제활동 과정에 활용되어 개인은 우편 쓸 일이 없다고까지 얘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즈음 우편물은 주로 기업에서 발송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발송된 우편물을 수취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입니다. 구미 선진국에 비해 적기는 하지만 우리 국민은 1인당 연간 100통 가까이 우편물을 수취합니다. 4식구인 우리집은 연간 400통 쯤 우편물을 수취한다는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월간지 등이 배달되는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길에 아파트 출입구 우편수취함이 터질듯 차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 듯합니다. 우편물 발송 주체로서 개인의 비중이 미미할지라도 수취 주체로서 개인은 여전히 건재하며, 개인은 우편 쓸 일이 없다는 주장은 수취 주체로서 개인을 깜박하고 하는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우편물을 수취하는 과정에서 우편수취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상상력을 조금만 동원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90년대초 건설된 아파트 단지입니다. 당시로는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건설해서인지 우편수취함도 전에 살던 단독 주택 대문에 위태롭게 붙어 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지고 튼튼한 스테인레스 재질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자주 받는 대형 우편물은 절반쯤 밖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장금장치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사할 때 열쇄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받았다 하더라도 지금 같은 구조로는 장금장치가 무용지물이기는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달된 우편물을 누군가 걷어가 버린다면, 우체국이 우편물을 접수하여 배달하기까지 기울인 온갖 노력, 특히 좁은 우편수취함 투입구로 우편물을 집어넣기 위해 비지땀을 흘린 집배원의 노고는 수포로 돌아갑니다. 개인적으로도 우편을 통해 연결되던 세상과 단절된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사랑의 수취함 달아주기 운동'을 통해 소외계층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우편수취함을 달아 주어 왔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편을 통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우편수취함을 안전하고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우정사업본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어찌 어색해 보입니다. 편익을 누리는 사람은 나인데 말입니다.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신주 단지 모시듯 들고 온 전화기를 단자에 연결하고 지인으로부터의 전화를 기다렸듯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통로인 우편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우편수취함을 개선하는데 나부터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관심과 힘만으로 어렵다면 지역공동체나 지자체 등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필요도 있습니다. 특히 새롭게 건설되는 집단 주거지에는 고시된 최소한의 규격을 충족하는 우편수취함이 설치되도록 유도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적절한 우편수취함을 갖추지 못한 주소지에는 우체국이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는다고 법령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소중한 우편물을 안전하게 수취하는데 우리집 우편수취함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그래서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우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용해 질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