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통신서비스와 방송서비스는 그 기술적 차이 및 보호논리의 차이에 기초하여 엄격하게 구분, 규율 되어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 광대역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인해 이전에 분리·규율되던 음성, 데이터 및 영상서비스의 융합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초기 융합 환경에서는 네트워크(설비, 망)와 터미널 간 융합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이제는 서비스 차원의 융합도 활성화되고 있는데, 인터넷뱅킹, 온라인게임 및 방송 서비스 등을 동시에 제공하는 IPTV가 대표적인 융합 서비스이다.
융합은 산업 영역의 구분을 무너뜨리는데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AOL- Time Warner 합병과 같이 서로 다른 비즈니스 영역의 사업자간의 상호 소유 또는 겸업도 융합이라는 기술·시장적 발전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 중 하나이다.
융합이라는 현상은 단순히 시장 차원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융합은 통신과 시청각(방송) 서비스로 각기 구분되어 규율되고 있는 각국의 통상체제의 재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의 국제교역의 규범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WTO 체제는 1995년 만들어져 인터넷의 발달 및 확산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의 기술적, 시장적 변화에 대응하는 통상규범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국가들은 통신과 방송분야를 각기 다른 규제논리 및 시장개방 원칙에 입각하여 규율하였다.
통신서비스 분야에는 상업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 시장개방주의가 만연하였다면 시청각서비스 분야는 자국 문화정체성 보호를 앞세운 보호주의 논리가 대세였다. 그런데 융합 환경 하에서 방송과 통신을 동시에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속출하게 되면서 융합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정책적 도마에 오르게 된다. 당국은 융합서비스 규제에 있어 기존의 통신 및 방송서비스와 대비하여 규제의 형평성, 시장경쟁 활성화, 공익의 확보 등 어떻게 보면 서로 상충되는 정책적 고려를 해야만 한다.
특히 방송과 통신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서비스의 시장개방에 있어 기존의 시청각서비스에 해당하는 조치를 적용해야 할지 아니면 통신서비스에 해당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직까지 국제적 차원에서의 통상규범 논의는 활발하지는 않아 융합서비스에 대한 국내 규제 및 통상정책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경우처럼 통신과 시청각서비스를 따로 구분해서 시장개방을 하던 방식을 버리는 나라들이 생기는 만큼, 융합의 확산으로 인해 각국의 통상 정책 및 국내 규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는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국가들이 취한 입장과 비슷하게 통신서비스분야 시장 개방에는 긍정적이지만 시청각서비스분야 시장 개방에는 소극적인 통상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과 방송서비스를 뚜렷이 구분할 수 없는 융합 환경에서의 통상정책은 분명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융합의 기술적·시장적 변화가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부합하면서 국제통상규범에 거스르지 않는 전략적 방송통신 통상정책의 수립은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