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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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늬권 놀이의 비극(?)

  • 작성자이호영  책임연구원
  • 소속미래융합연구실
  • 등록일 2009.07.21

최근에는 시들해졌지만 한 때 조금 사람이 모인다 싶은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1등이닷” “선리플 후감상” “가문의 영광” 등의 덧글이 대유행을 했다. 새 게시글에 가장 먼저 덧글을 달았다는 기쁨을 표시하는 방식의, 일종의 순위매기기 놀이였는데 그런 심리의 기저에는 한편으로 1등에 대한 선망과 다른 한편으로 (평소 1등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1등이든 ‘가문의 영광'이라는 식의 풍자가 깔려있었다. 1등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기에 그 놀이는 즐거움을 주었고 2등이 ‘아깝다. 한 발 늦었네요~'라는 덧글을 달면서도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의 순위는 바로 그 엄숙하지 않음과 무의미함으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순위와는 또 다른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인터넷에는 오프라인에는 존재하지 않던 갖가지의 1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포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주간 덧글 베스트, 가장 많이 본 뉴스, 추천 베스트 등등 거의 측정가능한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고 있고 네티즌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의 메이저 매체들도 그에 관심을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현재 다른 사람의 최대의 관심사에 관심이 있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에서 현재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장 많이 기울이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온라인 박스오피스에서 순위권 안에 들면 또 다른 클릭을 유발하기에 순위권 안에 들기 위한 경쟁 역시 매우 치열하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왜 우리 사회는 놀면서까지도 순위를 매기는 것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역사를 돌이켜보면 심각한 영역에서도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과학사회학자 머튼(R. Merton)이 지적하고 있는 과학적 발견에 있어서의 우선권 분쟁이 그것이다. 먼저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공인받아야 하는 압박감으로 과학자들은 이미 중세부터 골머리를 앓았다. 1등을 하면 가문의 영광이지만 2등부터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17세기에도, 18세기에도 달력은 엄숙한 과학 영역에서 우선권을 쟁탈하기 위해 비열한 수단을 동원했던 사례들로 얼룩졌더랬다. 물론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질적인 의미의 순위라기보다는 시간상의 순서의 문제일뿐이지만 그 둘은 현실에서 자주 혼동된다.

그 기준이 무엇이든 순위는 사고의 몇 단계를 줄여주며 판단에 중요한 근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일단 편리하다. 바쁜 세상에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남이 이미 판단한 것을 보고 준거로 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합리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순위 정하기는 명성 추구를 통한 일종의 사회 재생산 기제이면서 동시에 정보제공 장치다. 노벨상이나 아카데미상도 그렇고 빌보드 차트나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그렇고 영화 박스오피스나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순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순위권에 오른 사람(작품, 상품)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높은 평판을 부여한다. 때로 순위가 평판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도 있는데 방금 말한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에 종종 독자들은 책을 구입하기 전에 문학 리뷰를 검토하곤 한다. 비평가의 임무는 양화된 순위가 보여주지 못하는 정성적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판단기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순서나 순위정하기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깊이 있는 비판과 성찰을 포함하는 평판시스템을 가진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좀 더 발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선리플 후감상'이라는 댓글은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사회의 쓸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감상하지 않았지만 순위권에 들려는 이 놀이가 시간을 두는 평가에 인색하고 오직 지금 이 자리에서 고하와 선후를 가리려는, 우리 사회의 즉석 결과 중심주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판단일까.

인터넷에서의 순위는 대개 그 덧없음(ephemerality)으로 인해 상당 부분 면죄부를 받는다. 순위는 수시로 바뀌고 덧글은 지나가면 다시 보기 어렵다. 그 순위가 어떻게 정해졌었는지는 더더욱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런 순위를 끝없이 양산해내는 현재의 인터넷 문화에 대한 반성 역시 덧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계량화는 근대성으로 넘어가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국면이었다. 후발자인 우리는 주먹구구식의 잣대에 염증을 느끼고 느려터진 것들에 갑갑함을 느끼면서 성장해왔다. 경쟁을 도입하고 순위를 부여하고 그것을 보상하는 시스템의 효과는 과연 놀라왔지만 과연 모든 것에 자를 들이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그 잣대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려해보아야 한다. 순위를 정할 수 없는 것에도 순위를 매기고 거기서의 1등에 집착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이 다시 다른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여러 모로 반지성적이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순위가 너무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는 순위, 좀 더 좋은 평판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평판시스템 역시 경쟁체제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터넷이 발전시켰다는 롱테일의 꼬리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역시 늘어나고 있다. 문화적으로 볼 때 1등에 집착하는 사회는 그 성원들이 동질적 구심에 의해 끊임없이 호명당하는 동심원적 사회이며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미래가 없다. 순위권의 바깥에 대한 관심, 선감상 후리플의 시대, 투명하고 공정한,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평판시스템 등이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견인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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