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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방송통신 통상정책

  • 작성자강하연  책임연구원
  • 소속방송통신통상센터
  • 등록일 2010.03.16

요새 융합이 화두다. 네트워크와 터미널 간 융합에 이어 이제 서비스차원의 융합이 대세다. 융합은 정체에 머물던 통신서비스시장과 성장가능성이 무궁한 미디어산업의 시너지를 가능하게 하며 차세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융합은 단순히 국내 통신·방송 시장의 변화만 초래한 것이 아니다. 융합은 통신과 시청각 서비스로 각기 구분되어 규율되고 있는 기존의 국제 통상체제의 재정비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방송통신 관련 국제 교역의 규범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WTO 체제는 1995년 출범한 체제이다. WTO 출범 당시 다수의 회원국들은 서비스교역의 인프라로서 통신서비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시장자유화를 수용하였으나,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경우 미국 같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문화정체성 또는 문화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시장의 문을 굳게 닫았었다. WTO 체제가 출범한지 10년이 조금 넘은 지금,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해버렸다. 인터넷과 브로드밴드 기술의 발달은 통신과 방송(시청각) 서비스 교역을 개별적으로 규율하던 기존의 통상규범체제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 건너편에 사는 사람이 만든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나의 핸드폰 단말기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무엇이 통신이고 방송(시청각)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하의 통신 및 시청각 서비스 교역은 어떻게 규율되어야 할 것인가. WTO는 자유무역 진흥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기구이며, WTO 활동의 핵심은 회원국 간의 시장 개방, 즉 양허(concessions/commitments) 문제일 것이다. 방송통신 분야는 서비스 분야이기 때문에 서비스 규범을 다루는 WTO GATS(서비스무역에 대한 일반협정)에 의해 시장개방 양허표를 만든다. 양허표란 서비스 시장개방 여부와 개방 수준을 담는 요약표로서 WTO 회원국 간 양허협상에 의해 확정된다. 서비스 개방은 상품분야 개방과 그 성격이 사뭇 다른데, 일반적으로 상품시장 개방은 해당 품목의 관세를 인하하면 되지만, 서비스 시장 개방은 서비스 공급자와 서비스 소비자간 서비스 전달 양식(mode)에 대한 제한이 철폐되면서 이루어진다. GATS는 서비스 공급자와 서비스 소비자간 서비스 전달 방식의 구체적 방식을 국경 간 공급(cross-border: mode 1), 해외소비(consumption abroad: mode 2), 상업적 주재(commercial presence: mode 3), 자연인 이동(movement of natural persons: mode 4)으로 정의한다. 상기 기술한 양식을 각각 mode 1~4 로 부르는데 서비스 공급방식을 구분하는 기준은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의 소속 국적이 어디인가, 그리고 서비스가 전달되는 시점에서 이들의 지리적 소재를 근거로 한다. 나를 기준으로 내가 국내에 거주하는데 외국사업자가 해외에서 인터넷 또는 국제망을 통하여 나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는 국경 간 공급 서비스이다. 내가 해외로 직접 이동하여 해당 국가 사업자의 통신서비스를 소비한다면 이는 해외소비로 간주된다. 외국사업자가 국내시장에 직접 진출하여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이는 상업적 주재이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공급자가 기업이 아닌 자연인으로 국내에 직접 진출하여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는 자연인 이동으로 간주한다.

인터넷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기존의 WTO 시장개방 양식, 즉 각국의 통상체제의 변화를 촉구한다. 본 칼럼에서는 2가지 문제만 언급하겠다. 일단 기존의 서비스 분류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WTO에서의 시장개방은 11개 서비스 분야 및 개별 분야 목록에 소재한 서비스를 선택하여 양허하는 방식이다. 즉, 양허(시장개방)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양허표에 열거하여 개방하는 소위 positive listing system이다. 서비스 분류 목록 및 분류방식은 WTO 서비스분야별 분류목록(이하 W/120)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W/120 분류방식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논의되어 만들어진 분류표이기 때문에 90년대 이후의 기술적 진보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통신서비스 분야의 분류 경우, 텔렉스나 팩스같이 시장개방 논의가 불필요한 서비스가 아직도 분류체계에 유지되고 있는가 하면, 통신서비스 중 부가서비스로 분류되는 온라인 정보처리 서비스는 통신서비스인지 컴퓨터관련서비스인지 애매모호하다. 이밖에도 W/120 분류방식은 이메일이나 보이스메일을 부가서비스로 구분하고 있으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분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IPTV와 같은 다양한 융합서비스들이 향후 어떻게 분류되어야 할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방송과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상이한 시장개방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서비스 전 분야를 개방하였으나, 시청각서비스 분야는 ‘영화·비디오 제작 배포 서비스’와 ‘음성 레코딩 서비스’ 2개 분야만 양허하였다. 그러나 미디어의 글로벌 교역 추세를 감안하면 나머지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양허여부에 대한 결정을 언젠가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양허한 2개의 시청각 서비스는 외국인투자 한도가 없으나, 통신서비스 분야의 경우 우리의 기간역무에 해당하는 기본통신서비스는 외국인투자 한도 49%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통신사업자들이 미디어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미디어회사가 통신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상이다. 향후 부상하는 다양한 융합서비스에게 시장진입의 제한을 둘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 수준으로 두어야 할 것인가. 기존의 통신·방송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제한조치와의 수위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까. 향후 생겨나는 융합서비스를 어떻게 분류하여 규율할 것인가. 기존 방송서비스로 분류할 것인가 아니면 제3의 서비스로 분류할 것인가. 쉽지 않은 선택들이 앞에 있다. 역사적으로 시장친화적 통상 규범 및 규제는 글로벌 교역의 촉진제로 작용하였다. 방송 및 통신 법제도의 개정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인 지금, 정부의 미래지향적이면서 국제통상규범에 부합되는 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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