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 배운 신분 계급보다 실제로 훨씬 더 많은 하층 계급이 존재하고, 그래서 혹시나 하인들이 꺼내 먹지 못하도록 냉장고에도 자물쇠를 채운 모델이 히트상품이 되는 나라. 그러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아 휴대전화 이용자가 5억 명이나 되는 나라가 인도다.
이 나라는 지구촌의 ‘소프트웨어(SW) 인력 공급기지’로 불릴 정도로 정보기술(IT) SW와 서비스 산업을 이끄는 전문기술 인력이 50만 명에 달하고, 그중 절반 이상이 경력 5년 이상의 숙련자다. 인도공과대 등 230여 종합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 기술자만 연 12만 명, 그 가운데 4만∼5만 명 정도는 영어실력을 배경으로 미국·영국 등지로 곧장 진출할 정도의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우리나라 IT 업계의 해외 매출 비중이 7∼8%에 머무는데 비해 인도 IT 산업은 그 비중이 평균 70%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런 부러운 수치가 단순히 전문인력을 많이 배출한 덕분에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인도 정부는 1980년대 중반 SW 산업 발전의 가능성을 읽고 수출을 강조하는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세금과 관세 면제, 외환송금 자유, 100% 외국지분 허용 등의 파격 조건을 내걸고 ‘수출지향형 SW 테크노파크’를 조성했다. 98년에는 인도를 글로벌 IT강국과 세계 최대의 SW 생산국으로 만들기 위한 10년 장기 국책 프로젝트를 시작됐다.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 수요에 대응해 SW 기반 애플리케이션의 아웃소싱 사업을 시작해 연평균 30%의 고속성장을 했다. 사업 영역도 원천·융합·지식 기반형 기술로 점차 넓혔다. 그 결과 국가 전체적으로 IT 직접 고용 인력은 250만 명에 달한다. IT서비스 분야 1위 기업인 TCS(Tata Consultancy Services)는 지난해 기준으로 14만 명을 고용한다.
특히 인도 IT가 겨냥한 가장 큰 시장의 하나가 금융서비스이며, 전체 IT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는 국가 전산망 사업이나 전자정부 프로젝트 같은 공공수요를 통해 IT를 일으켰고, 하드웨어(HW)와 제조업에 치중했다. 이에 비해 인도는 서비스 산업 기반의 IT강국인 셈이다. 인도 IT는 또 내수가 20% 미만이다. IT 전문 인력과 기술·서비스를 수출하는 구조라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 IT 강국을 내세우지만 정작 서비스와 핵심 기술은 국내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우리나라와 분명 다르다. 특히 잠재력이 엄청난 내수 시장과 양질의 노동력, 저렴한 임금이라는 강점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펼치는 인도의 경쟁력은 위력적이다.
물론 인도 IT의 여건이 밝기만 한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다섯 배가량 되는 인터넷 요금과 또 다른 인구 대국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한 컴퓨터 보급률, 치솟는 인건비 등이다. 해외시장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나름의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IT 서비스의 해외사업 경험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풍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도를 배우고 인도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 업무 제휴를 통해서라도 자꾸만 해외시장으로 뛰쳐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IT 업체들은 인터넷 인프라는 뛰어나지만 활용도는 떨어지고, HW·제조업은 강하지만 SW·서비스는 약한 우물 안 개구리식 내수 산업 구조에 머물 것이다.
스마트폰·스마트TV 등 똑똑한 IT기기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세계시장의 무게 중심도 HW·제조에서 SW·서비스 옮겨가고 있다. HW 기반의 IT 강자들에게 불확실성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과 정부가 이런 흐름을 외면하면 예측하기 힘든 글로벌 경쟁 시대에 ‘IT 코리아’는 점점 잊혀질지 모른다.
* 본 칼럼은 중앙일보 9월 29일(수, E04면) [경제 view&]에 게재된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