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존재의 모습을 가진다. 가정에서는 자식이기도 하고 부모이기도 하며, 남편 또는 아내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동료이기도하고 상사이기도 하며, 부하직원이기도 하다. 온라인에서는 네티즌이기도 하며 블로거이기도 하고 트친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사람은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존재한다. 가끔 자신에게 던져보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가수다', `나는 아빠다' 등의 몇 마디로 자신을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물건도 그렇다. 아이패드의 예를 들어 보자. 아이패드는 사용자의 주용도나 상황에 따라 업무 향상을 위한 PC이기도 하고 e북 리더기, 게임기, 내비게이션, 심지어는 와인 바의 메뉴판으로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미국의 케이블TV 사업자인 타임워너 케이블과 케이블비전이 아이패드를 통해 실시간 유선 방송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아이패드가 세컨드 TV로서의 존재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케이블비전은 아이패드로 무려 300여 개의 채널을 시청할 수 있으며, 타임워너 케이블은 43개의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다.
이들이 아이패드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도입하게 된 배경으로 넷플릭스, 훌루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OTT)의 급속한 성장, IPTV와 통신서비스의 결합을 통한 통신사업자의 압박 등을 들 수 있다. 아이패드를 통해 케이블 채널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것에 대해 케이블TV 사업자와 프로그램 프로바이더(PP, Program Provider) 간에 이견이 존재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을 고려할 때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이 세컨드 TV로 자리를 잡는 것은 시간의 문제로 보인다.
세컨드 TV로서의 추가적 의미가 정립되는 과정은 방송 콘텐츠 공급시장을 둘러싼 기술적, 경쟁 상황적 요인들에 영향을 받지만, 방송 관련 시장의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태블릿은 통신서비스(특히, 초고속 인터넷서비스)와 방송서비스를 결합한 번들링 서비스로의 가입을 유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됨으로써, 번들링 시장의 경쟁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블TV 사업자가 먼저 나섰지만,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들도 이에 대응하여 태블릿을 활용한 실시간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케이블TV 사업자와 통신서비스 사업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글로벌 트렌드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용 TV로서의 태블릿의 대중화는 스마트TV 시장의 전개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년 10월에 출시된 구글TV는 기대와는 달리 성과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될 수 있으나, 구글이 방송 콘텐츠의 주요 공급자라고 할 수 있는 지상파 사업자들을 설득하지 못해 기본적인 방송 콘텐츠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터페이스를 갖춘 단말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스마트 TV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태블릿(또는 스마트폰)과 TV의 연계를 강화하는 구조 하에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방송 콘텐츠 수급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케이블TV 사업자나 통신사업자가 확보한 콘텐츠를 TV를 통해 활용하되, 애플리케이션과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TV와의 무선 연결을 통해 태블릿(또는 스마트폰)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스마트TV에서 `스마트' 부분을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맡기는 방식이다. 애플의 에어플레이(airplay)도 본질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TV라는 기존의 고정된 틀(frame)에서 벗어나 TV와 태블릿, 스마트폰의 확장 가능성과 이들 기기 간의 조합으로 생성될 수 있는 새로운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4월 14일(목, 22면) [디지털 산책]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