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SO 채널편성권'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일간지 기사(`방통위, SO 채널 임의편성권 철회하라', `빠지면 죽는다… 케이블TV 채널 편성권 논란' 등)에서부터 심지어 수많은 학술논문에 이르기까지 어느새 SO는 `채널 편성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SO가 편성권을 가지게 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 내게 "SO의 (채널) 편성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SO가 편성권을 가진다고요? 허허. 참. 희한한 일이네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그런가. 일단 편성의 정의를 살펴보자.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편성은 `방송되는 사항의 종류·내용·시각·배열을 정하는 것'(제2조 15호)이다. 그렇다면 `방송되는 사항'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우리 방송법은 `방송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방송되는 사항'은 곧 `방송프로그램'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 방송법상 `종합편성'의 정의(보도·교양·오락 등 다양한 방송분야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나 `전문편성'의 정의(특정 방송분야의 방송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편성하는 것) 모두 편성의 기본단위를 `방송프로그램'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방송프로그램'의 정의(방송편성의 단위가 되는 방송내용물)나 `방송분야'의 정의(보도·교양·오락 등으로 방송프로그램의 영역을 분류한 것)를 보더라도, 방송편성과 방송프로그램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방송법에 근거, 편성의 개념을 단순화하면, 편성은 `채널 내에서 방송프로그램을 시공간적으로 배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편성의 대상은 방송프로그램이며, 편성의 내용은 방송프로그램을 배열하는 행위이고, 이 때문에 편성권을 가지는 주체는 방송프로그램의 배열 주체인 `채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편성행위는 방송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방송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활동이며, 편성주체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방송의 자유와 관련한 핵심 근간(이재진, 2004; 배진아, 2007)이다. 우리 방송법(제4조)에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SO나 IPTV, 위성방송사업자 등이 채널을 배열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들 역시 엄연한 방송의 주체이며, 양질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배열하는 행위와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채널 배열(또는 배치)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방송법은 이러한 행위를 유료 플랫폼의 채널 구성과 운용(방송법 제70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 SO의 채널 배치 권한은 `채널 구성권(또는 운용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편성권은 편성의 주체인 채널의 몫이니, SO도 더 이상 편성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채널 구성권을 가지는 존재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이다. SO가 채널 구성권이라는 용어 대신 채널 편성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우리 방송법에서 `편성권'이 보호받는 용어여서 함께 보호받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용했는지 말이다. 혹시라도 후자의 이유라면 이는 더욱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채널 구성권이 프로그램 편성권보다 덜 보호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향후 우리 미디어 정책에서 채널 구성권은 분명 프로그램 편성권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글 읽는 자의 오해는 글 쓰는 자의 숙명과 같은 것이어서 피하기 어렵다. SO의 채널 편성권을 부정하는 것이 누군가를 봐주기 위함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김훈)이다. 용어의 명확한 사용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3월 07일(수, 22면) [디지털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