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눈에 띄는 기사 몇 개를 봤다. 그중 작년 SBS방송사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이민호가 중국 최고의 음반회사인 화이브라더스 뮤직과 함께 아시아 투어를 할 것이라는 기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굴지의 엔터테인멘트 회사인 SM이 한국과 중국 시장을 각각 공략하는 신인 그룹인 EXO-K 및 EXO-M을 데뷔시킨다는 기사가 흥미로웠는데,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EXO-M 그룹의 멤버 6명 중 2명은 한국인이고, 나머지 4명은 중국인이라고 한다. 이 두 그룹은 같은 날 같은 곡으로 중국어와 한국어로 노래를 동시에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음악, 미술, 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라는 개념은 해당 국가의 역사적, 경제적, 전통적 관념이 구체화되고, 특정 산업과 연계되어 자국 내 국민들에 의해 소비되는 상품으로 인지되어왔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혁신적인 전송매체의 등장으로 문화 상품 및 서비스의 소비는 즉각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튜브 (Youtube)에 올린 빅뱅의 콘서트 동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작금의 세상에서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지적하는 ‘문화적 할인 (cultural discount)’1)의 원리가 작동하는지 정말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21세기의 문화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은 특정 물리적 공간(국가)을 기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력, 노동력 및 창의력이 각각 다른 출처에서 제공되어 만들어지는 문화상품/서비스의 출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단 초국적인 성격을 지닌 문화상품/서비스와 국가단위의 법규제와의 충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몇백 년 전, 정확히 말하자면 1648년에 세워진 웨스트팔리아 체제2)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문화’는 국가단위 통치체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주요 장치이자, 해당 국가의 시민 아이덴티티 형성의 기본 배경으로 여겨진다. 이러다 보니, 21세기 문화상품/서비스의 생산 및 소비의 초국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문화정체성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다양한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하고 복잡한 장르별 국내물 편성규제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들을 앞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바람직한 걸까?
어떻게 보면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내지 못한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문화, 글로벌 시민(global citizen)을 양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국가가 일방적인 정책 또는 규제를 통해 고수할 수 있는 세상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갖게 된, 소위 ‘한류’라는 현상은 결코 국가규제의 산물이 아니며, 더군다나 우리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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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문화상품이 처음 제작된 국가의 문화권 안에서 나타난 인기가 호응이 지리적, 공간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이질적인 환경에서 소비될 때 일정한 할인이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캐나다는 미국과 지리적, 언어적으로 밀접하기 때문에 미국의 문화산물이 캐나다에서는 비슷한 호응도와 소비패턴을 보이지만 동일한 문화산물이 언어적,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일본에서 소비될 때엔 그 수용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주2. 1648년, 30년 종교전쟁이 끝나면서 황권과 교황권이 축소되고 영토국가의 주권을 종교적, 제국적 권위에서 독립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중앙집권적인 국민국가(nation-state)가 등장하고, 이들 국가를 구성원으로 하는 국제질서가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