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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획정론의 일대기

  • 작성자곽주원  부연구위원
  • 소속통신전파연구실
  • 등록일 2012.06.11

1959년에 Adelman이라는 MIT 대학의 교수가 SSNIP Test를 이용한 시장 획정 방법론(이하 시장획정론)을 최초로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미국 법원들이 이 방법론을 토대로 판결을 내렸고, 그 뒤 1982년에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기업결합 가이드라인(Merger Guideline)을 처음으로 발간하면서 시장획정론을 공식적인 방법론으로 채택하였다. 유럽연합(EU)에서도 법원과 규제당국은 시장획정론을 토대로 법률적 판단을 내려왔고, 1997년에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도 이를 공식적인 방법론으로 채택하였다.

시장획정론은 시장 집중도 및 지배력을 측정하는데 매우 편리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일단 관련시장이 획정된 이후에는 점유율을 기반으로 HHI지수를 산출하여 전체 시장의 집중도를 측정하고, 개별 기업의 지배력은 해당 기업의 점유율을 기준으로 측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HHI지수의 변화량만을 기준으로 일차적인 기업결합심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획정론은 기업결합심사에서 가장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시장획정 방법론은 기업결합심사를 위해 고안된 정책 수단이지만, 기업결합심사 이외의 분야에서 응용되어왔다. 예를 들어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에 대해 법률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여야 한다. 이때에도 먼저 시장을 획정하고, 해당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기준으로 시장 지배력을 측정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또한 통신규제당국도 시장획정론을 응용하여 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경쟁상황평가는 주요 통신서비스 별로 시장을 획정하고, 각 시장별로 경쟁 상황을 평가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어온 시장획정론이지만, 최근 10년간 많은 미시경제학자들이 이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비판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A와 B 사이의 기업 결합심사를 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먼저 규제당국은 A와 B 그리고 여타 상품들(C, D, E, F 등) 사이의 교차가격탄력성을 구하고, 이를 토대로 A, B, C, D, E, F 등의 상품이 하나의 시장에 속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시장을 획정한 이후에는, 해당 시장의 HHI 지수를 구해 일차적으로 A와 B 사이의 합병을 심사한다.

그런데 규제당국이 기업결합심사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합병 이후에 A와 B의 가격이 상승할 것인지 여부이다. 그런데 가격의 상승 여부는 A와 B 사이의 가격탄력성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으로, 이는 C, D, E, F 등이 A/B와 어느 정도 대체성이 있는지 여부(즉, 같은 시장에 속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시장획정론에 따르면, C, D, E, F 등을 하나의 시장으로 획정할 것인지 여부에 따라 A와 B 사이의 합병을 승인할지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시장획정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2000년에 Salop과 O'Brien은 Price Pressure Index라는 지수를, Farrel과 Shapiro는 Upward Price Pressure라는 지수를 개발한다. 이 지수들은 공통적으로, 기업 결합 심사의 대상이 되는 두 상품 사이의 대체성(즉, A와 B의 대체성)만을 통해 합병 이후에 두 상품의 가격이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위의 문제의식은 2010년에 미국 법무부와 FTC가 개정한 Merger Guideline에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과거 1992년에 발간된 Merger Guideline은 시장획정론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규제 당국이 일단 시장을 획정하여 HHI 지수를 기준으로 기업결합심사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2010년에 발간된 Merger Guideline은 시장획정론을 다루기에 앞서, 기업결합의 반경쟁성을 보여주는 여러 증거(예컨대 Upward Price Pressure와 같은 증거)들을 다루고 있다. 즉, 시장을 획정하지 않고 기업결합의 반경쟁성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기업결합을 불허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erger Guideline은 시장획정론을 완전히 없애지도 않았는데 시장획정론을 공식적인 법리로 인정한 수많은 판례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아마도 시장획정론을 부인하는 미 대법원의 판례가 나오는 시점에 시장획정론도 그 역사적 소명을 끝내고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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