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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시대 신인류 사이보그(Cyborg)

  • 작성자조성은  부연구위원
  • 소속미래융합연구실
  • 등록일 2013.03.12

사이보그 인류학자 앰버 케이스(Amber Case)는 'We all are cyborgs(우리 모두는 사이보그이다)' 라고 선언한다. 흥미롭지만 쉽게 동의하고 싶지 않은 선언이다.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가 우리 일상에 점점 깊이 침투하면서 우리의 기계의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렸을 때 미국 드라마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모즈를 보면서 '사이보그되기'를 꿈꿔본 적은 있다. 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각각 다리와 귀를 기계장치에 의존하게 됐는데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누구보다 먼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열심히 봤던 만화영화에서의 사이보그는 로봇의 개념에 더 가까웠기에, 실사영화에 등장한 이들은 더욱 인간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부럽기 짝이 없던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처럼 사이보그가 되기 위한 대가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다. 우선 몸의 어떤 기능이 망가질 정도로 큰 사고를 당해야 했다. 죽거나 너무 많은 기능이 망가지면 안 된다. 얼마나 아플까. 그 다음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당할 재력이 있어야 했다. 어떻게? 국가가 날 찾아오려나? 그 정도의 걱정만으로 쉽게 포기했던 '사이보그로의 재탄생'이었는데, 40줄에 접어드니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란다. 나이를 먹으며 세월을 보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셈이다.

앰버 케이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는 우리들이 외부두뇌를 활용하는 신인류이며 21세기형 사이보그라고 말한다.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소모즈처럼 어떤 기계 장치가 내 몸 안에 장착되는 것 대신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사이보그가 된 것이다. 최근 구글이 ‘구글 글래스’를 선보였고, 우리는 애플의 ‘아이워치’를 기다리고 있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이어 돌돌 말리는 스마트폰까지 상용화된다면 지금보다 더 그럴듯한 사이보그가 되어있을 것도 같다.

과거 가상의 사이보그 영웅은 자신들의 기능을 활용해 첩보원으로 활약했는데, 누구나 사이보그인 지금, 이 확장된 기능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대답을 할 수 있어서 꺼낸 질문이 아니다. 아마 꽤 오랫동안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할 질문일 것 같아 던져본다.

앰버 케이스는 "우리가 원하는 누구와도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적 친밀감(ambient intimacy)"이 높아진 스마트 시대이기에, 보다 안심할 수 있고 (고립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고)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말을 배우기 전에 컴퓨터 클릭을 먼저 했던 세대에게는 보다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기술에 이용당하지 않고 기술을 이용하기만 한다면 세상은 인간을 점점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우리들이, 그리고 더욱 정교한 사이보그가 될 다음 세대가 이 확장된 기능을 잠시 접어둘 여유를 계획대로 누리며 기술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일상의 기억이나 정보를 외부두뇌(스마트기기)에 맡긴 그 자리를, 보다 인간적인 무언가로 채울 능력이 우리에게 정말 있는 것일까? 그냥 두뇌기능의 퇴화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노래가사도 안(못) 외우고, 친구 전화번호도 안(못) 외우고, 길도 스스로 안(못) 찾고 있는데 우리 두뇌기능은 괜찮은 것일까?

초연결사회(high-connected society)인 스마트 시대에 대해 앰버 케이스는 '환경적 친밀감'을 이야기하지만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묶인 자아(the tethered self)의 불안정한 고립"을 화두로 삼는다. 환경적 친밀감과 묶인 자아는 초연결사회에서의 실재 세계와 가상 세계의 밀접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표현이 다른 것은 스마트 시대의 미래에 대해 긍정성에 방점을 두느냐 부정성에 방점을 두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앰버 케이스는 실재 세계에서처럼 디지털 세계에서도 스스로를 표현해야 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표현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셰리 터클은 서로 묶인 채 다양한 채널로 멀티태스킹을 하느라 정작 관계의 부재를 경험하게 된다고 본다. 한 예로 같은 카페에 있지만 각자 스마트톡을 하고 있느라 눈앞의 상대와는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늘 대기상태에 있는 미디어 때문에 정작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의 감각을 잃어간다. 또 관리해야할 관계가 무한정 늘어나면서 멀티태스킹을 해도 따라잡기 힘들게 되지만 이와 동시에 관계의 깊이는 점점 얇아지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인터넷 세상을 맞은 우리 세대보다 영유아 때부터 스마트 기기와 함께한 아이들 세대에서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친구의 응답이 바로 오지 않으면 그에 대해 불안해하고 바로 다음 친구에게, 다음 친구에게 끊임없이 그리고 '당연히' 연결을 시도한다. 그럼으로 해서 자신이 어떤 네트워크에 '묶여있다'는 것을 확인받지만 그것뿐이다. 이 지점에서 셰리 터클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 가까워지고 있을까?"

셰리 터클을 언급한 이유는 스마트 시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셰리 터클의 지적이 앰버 케이스가 간과한 부분도 아니다. 사실 이 둘은 '현상'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다. 셰리 터클이 우리의 인간관계가 기술에 의해 조정된다는 관점에서 현재의 사회현상을 논하는데 그친 반면, 앰버 케이스는 현상의 이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우리의 보다 인간적인 삶을 도울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아간 것이다.

지나친 낙관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앰버 케이스의 주장대로라면 기술이 먼저이든 인간의 필요가 먼저이든 기술을 이롭게 활용하는 것은 결국 후천적 결과이고 우리의 의지 문제가 된다. 그녀는 지금 사이보그 인류학자이면서 플랫폼 개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더 정교한 사이보그가 되는 것과 더 인간적인 삶을 영유하는 것 간에 어떤 간극이 있기 보다는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것들로 보는 그녀의 인식이 실천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는 사회 현상을 논할 때 우리의 위치를 그 사회 구성원이자 행위자가 아니라 독립적 제 3자인듯한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상관없는 제 3자인 양 비판하고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기보다는 앰버 케이스처럼 우리 한명 한명이 기술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높인다면 디스토피아보다 유토피아적 결론에 보다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 그 정도의 자세만으로도 기술의 노예가 된 것 같이 들렸던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라는 그녀의 선언이 이제는 과거의 영웅에 가까워진 미래 인간형으로서의 사이보그로 연상된다.

앰버 케이스의 긍정적 시선과 위에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스마트한 기술을 스마트하게 이용할, 보다 인간적인 주체가 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시작하고자 한다.

<참고자료> ---------

[TED TALKS]앰버 케이스: 우리는 이제 모두 사이보그입니다. (☞ 해당내용 바로가기)
셰리 터클 (2012). 『외로워지는 사람들』 (이은주 옮김).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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