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중소기업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독일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중소기업을 육성하고자하는 국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주요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2008년 대비 2011년 마이너스 고용 증가율과 부가가치 증가율을 기록한 반면, 독일의 중소기업은 각각 1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독일 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당연히 독일 중소기업을 강하게 키워내는 요인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책적인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 영역은 크게 자금, 인력, R&D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제약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금, 인력, R&D는 이들 요인 간의 상호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의 강력한 육성의지와 재원 투입에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정책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부문을 지원하더라도 다른 부문이 취약하면 지원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독일, 미국 등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것도 이러한 문제 영역들 간의 악순환적 상호작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과 미국은 중소기업 제약 요인들을 경쟁력 강화 요인으로 전환하는 선순환적 상호작용을 이끌어 낸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핵심은 어떻게 자금, 인력, R&D 요인 간의 선순환적 상호작용을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의 정책 환경은 각국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특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독일과 미국에서 관찰되는 공통점의 하나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기업들 간의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강력한 법집행 체계 또는 대-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이 그것이다. 공정경쟁 환경은 경제주체 간의 기본적인 경쟁 규칙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중소기업 생존과 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은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강력한 경쟁법 집행체계를 가지고 있고,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라는 최상위 정책기조 하에서 불공정 경쟁과 거래로 인한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주력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기계, 화학, 전자, 금속 등의 제조업에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전통도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독일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간의 연합을 통해 대기업의 납품 단가 조정, 불공정 거래 행위 등에 대해 공동 대응에 나서기도 한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대-중소기업 간의 대등한 관계를 가능케 하는 법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전통, 중소기업 간의 공동 대응이라는 다차원적인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다. 적어도 독일은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에게 대기업과의 관계가 치명적인 제약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에 관한 강력한 법제도를 갖췄다고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상의 기업 환경이라도 환경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으며, 결국 기업 스스로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와 공정경쟁의 확립은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공정한 거래환경과 대-중소기업의 상생적 협력관계, 히든 챔피언으로 대표되는 독일 중소기업 성공의 감춰진 조건(Hidden Condition)이 아닐까?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1월 7일(목)자 22면 [디지털산책]에 게재된 글입니다. (☞ 해당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