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지를 치켜든 푸른 테두리의 ‘좋아요’ 버튼에 익숙할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에서 관음(물론 ‘관찰’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만 하고 자신의 존재를 기어이 숨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거북한 장치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페이스부커에게 좋아요는 가장 가시적이면서도 계산 가능한 타인의 ‘호감’을 보여주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에게 간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친구가 5천명에 달해서 더 이상 친구를 받을 수 없게된 유명인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페이스북 이용자라면 자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내 글에 대한 타자의 승인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초기에는 페이스북에 ‘싫어요’ 버튼은 왜 없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좋아요가 많지 않은 것이 ‘별로 안 좋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충분히 좋아요가 많다면 그 갯수만 가지고도 호감과 비호감은 표현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분형(dichotomous)의 선택은 디지털이 문명의 규칙이 된 이후로부터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타자에 대한 호감 드러내기나 좋아요를 많이 획득한 타자의 장점 발견하기처럼 그 문법이 간단하지는 않다. 좋아요는 페이스북의 내부에서 승자독식시장의 강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SNS가 만들어내는 담론/관계 공간의 외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SNS가 도입될 때 많은 사람들은 유명인과 나와의 사이에 1단계밖에 없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열광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수, 배우와 ‘친구’라니 얼마나 쿨하고도 핫한 일인가. 물론 SNS 이전에도 팬클럽이라든가 동호회 등을 통해 우연히 마주친 ‘유명인’이라든가 유명인이 우연히 내 글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 혹은 직접 덧글을 다는 것 등을 통해 커뮤니티의 죽순, 죽돌이가 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당장 싸이월드는 그런 의미에서 1촌이라는 한국적이고도 소셜네트워크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대중문화의 팬덤을 키우는 데 공헌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그 관계의 지속가능성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관계는 쌍방향이지만 관심은 일방향이고 좋아요라는 버튼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주어지지만 사랑의 짝대기 수는 비대칭적이다. 그러한 비대칭성은 비단 유명인과 일반인인 나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발생하며 그 결과 좋아요의 불균등한 분배는 이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눈에 띄게 된다. 우리는 모두 누가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무한 동원으로 인해 몇몇 이들은 SNS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그 피로감에 비해 ‘타인의 인정’으로 인한 행복감이 더 크기에 SNS의 영토는 계속 확장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은 SNS란 결국 이용자의 이러한 관심과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는 미디어 기업의 열정 착취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 관심 획득 레이스의 무한경쟁에서 승자는 소셜 플랫폼 그 자체가 될 것이며 참여자들은 모두 루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소셜 플랫폼이란 애초에 이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재료로 이윤을 창출하는 악마의 맷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제공하는 것은 페이스북(페이스북이 아니라 구글이라 해도 좋고 다른 무엇이라 해도 좋다)이 갖고 있는 노출의 원리, 바꾸어 말하면 중요성에 대한 철학의 존재다. 물론 이 철학은 당연히 페이스북에 많이 방문하게 하고 오래 체류시키고 많은 글을 올리게 하려는 인센티브를, 그래서 더 많은 광고를 유치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우리는 이제 좋아요가 이미 더 많이 붙은 글과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의 좋아요는 다른 이의 좋아요를 부르며 그 글은 계속 타임라인의 윗단에 배치된다. 안 누르면 나를 귀찮게 하는 알림은 줄어들지만 그만큼 내가 받을 수 있는 정보와 관심도 함께 축소된다.
바야흐로 불평등이 화두인 시대에 우리는 ‘좋아요’와 같은 평판의 기제 때문에 물질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관심의 불평등한 분배에도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일견 포기하면 편할 것 같은 이 단순해 보이는 결과는 다시 물질적 분배도 영향력을 미쳐 불평등의 새로운 차원을 열 것이 예상된다. 측정하기 어려운 SNS의 장기적 영향력에 대한 설명은 이 지점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얻는다. SNS는 기본적으로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 간에서 정보교환이 일어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라노베타는 일자리를 구할 때 필요한 정보를 오히려 “약한 연결”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얻는다는 경험적 연구결과를 근거로 더 다양한 사회연결망을 가진 사람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연결사이의 접촉은 간헐적이며 따라서 이들 사이는 유사성보다는 이질성이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온라인 사회연결망은 유사성의 원리, 즉 동종교배/유유상종의 질서를 강화하며 좋아요는 이미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에게 몰표를 줌으로써 더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 연결의 동질성이야말로 좋아요를 많이 얻는 길인 셈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클릭 한 번의 좋아요가 만들어내는 이 사이버세계가 1%의 매력적인 사람에게 99%의 관심을 몰아주어 뒤에 남는 사람, 더딘 사람, 실패한 사람에 대해 넌 더 매력적이도록 노력해봐, 더 자기계발을 해봐라고 권하는 것을 넘어 이 세계가 아름답지 못한 책임을 지도록 할까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