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라는 말이 널리 퍼진 건 셰익스피어를 통해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Macbeth)의 1막 7장 서두에 이 문구가 나온다. 맥베스의 부인이 맥베스에게 던컨왕을 죽이고 왕위를 뺏을 것을 부추기는 장면이다. 맥베스는 ‘왕위’라는 말을 듣자마자 들끓는 자신의 욕망을 알아챘고, 그 욕망을 따랐을 때의 비극적 결말마저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독이 든 성배’로 칭했다. 하지만 이를 끝내 내치지 못하고 마신다.(엄주엽, ‘독이 든 성배’, 문화일보, 2014. 7. 3.) 이는 독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일단 수용한 뒤 결국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중요성이 인정되나 높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의미를 살펴볼 때 과거 우리나라 국가재난망 구축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새로이 추진되고 있는 PS-LTE 기반의 국가재난망 구축사업도 이러한 우려가 같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 6월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2003년부터 업무범위가 다르고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재난 관련 기관들이 현장에서 신속·정확한 의사결정 및 일사불란한 구조작업이 이루어질 있도록 국가재난안전통신망(과거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이 계획되었다. 계획에 따라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시범 및 확장1차사업이 진행되었으나 특정업체 독점 문제, 사업의 경제성, 사업 추진방식의 적절성 등에서 논란이 제기되어 사업이 전면 중단되었다. 한 차례의 감사원 감사와 세 번에 걸친 예비타당성 조사가 추진된 사업으로 그 중요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으나 사업추진 과정의 높은 위험성으로 인해 서로 마다하는 ‘독이 든 성배’가 되었다.
지지부진하던 국가재난망 구축사업은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대국민 담화 후속조치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 조기 추진 방침에 따라 부처 협업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술방식으로 재난망용 LTE(PS-LTE)를 차세대 재난망 기술방식으로 선정하였고, 이에 따라 국민안전처의 정보화전략계획(ISP)이 수립되고 있고, 곧 시범망 구축사업이 예정되어 있다.
조기구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 편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구축의 중요성, 즉 재난현장에서 기관 간의 일사불란한 지휘와 협조체계의 확립은 아무도 부인을 하지 않는 ‘성배(聖杯)’이다. 다만 PS-LTE가 전 세계적으로 시범사업이 추진되는 초기 단계로 아직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는 보장이 없고, 관련 국제 기술표준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이에 따른 예산낭비 우려가 있다는 등 재난망 구축사업 조기 추진에 따른 ‘독(毒)’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있다. 필자도 재난망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배에 담긴 독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몇 번이나 망설이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제시되는 비판과 우려는 ISP와 시범사업을 통해 신중하고 다양한 접근을 통해 과오를 최소화하는데 소중하게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독이 든 성배’였던 과거 재난망의 사례를 살펴보자. 관련된 많은 이해관계자의 득실에 의해 정작 가장 중요한 구축의 핵심은 온데간데없이 특정 기술이나 경제성, 부수적인 일들을 마치 핵심인양 부풀려서 논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가지 않았는가? 이럴 때일수록 부수적인 논란은 재난망 구축의 핵심을 되짚어보아 해결하고, 의견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논의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재난망의 성공적 구축 및 활용을 위해서는 관련 로드맵에 따라 일정대로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를 위한 예산의 안정적 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이 들어있다’라고 두려워하고, 주저하거나 마다하면 어찌 ‘성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시범사업, 본사업 등 사업 추진 과정에서 우리의 열정과 의지, 신념과 능력을 재난망 구축사업에 잘 담아내어 우려와 걱정을 해소하고 일정에 맞추어 원하는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