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4년 동안 법대를 다니면서 계속해서 듣고, 마음에 새겼던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 권리가 있음에도 주장하지 않고 보호받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로 인한 문제점에 대해서 불평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 동안 잊고 있던 이 말이 작년 1월 카드3사의 개인정보 유출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 생각났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 당시 그 여파는 상당했으며 카드3사의 고객들은 당황했다.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카드3사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고, 내가 그 고객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처음에 사실을 접했을 때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지라도 큰 피해가 없을 거라는 사실에 무관심했다. 그렇지만 이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당장에는 2차 피해가 발생해도 큰 피해가 없겠지만 향후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겼다.
그 당시 나의 경우 2차 피해는 없었고, 카드3사는 후에도 2차 피해는 없을 것이며 발생 시 책임지겠다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도로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충북지방변호사회 공익소송지원단에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관련 단체소송을 위임하여 권리를 행사하였다. 충북지방변호사회 공익소송지원단이 성공보수 전액을 기부한다고 한 점도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친 원인 중의 하나였다.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2차 피해가 없더라도 개인정보유출 그 자체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받은 것이기에 직접적인 금전적 피해가 없더라도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위자료 청구가 가능했다. 민법은 위자료를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의 배상으로서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민법 제751조, 제752조), 정신적 손해를 금전으로 평가하여 금전으로 배상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제394조, 제763조).
현재 카드사들로부터 온 답변서를 보면 소송과정이 순탄할 것만 같지는 않지만, 당장은 승소나 손해배상을 받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나중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제도적, 기업적 측면에서도 계속해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인정보유출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이 개정되어 고의나 중과실로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관에는 가중 책임을 물어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액을 중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었다. 또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액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않아도 법원 판결을 통해 300만원 이내에서 일정 금액을 간편하게 보상받는 ‘법정손해배상제도’도 도입되었다. 이러한 제도들의 도입으로 기업들은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이전보다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클 경우에는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이 가능한데, 개정으로 수정 사유의 범위도 확장되었다. 물론 현재 개인정보유출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고 피해를 입은 점을 감안하면 필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 수정은 기존의 문제 해결 없이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기술적, 제도적 보완이 철저히 이루어진 상태에서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무엇보다도 나를 포함한 국민 개개인들의 인식 변화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비밀번호 변경과 같은 작은 행동이 내 개인정보를 지킬 수 있는 소중한 행동인데 순간의 귀찮음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식의 개선과 제도의 변화를 발판으로 발전된 정보사회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