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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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우체국, 어떻게 유지할까?

  • 작성자최중범  부연구위원
  • 소속우정경영연구소
  • 등록일 2016.06.03

십 년 불입한 개인연금보험이 만기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연말 정산에만 정신을 팔았지 상품 성격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는 단순히 만기된 적금을 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거래 은행을 찾게 되었다. 목돈을 구경하게 된다는 다소의 흥분에 휩싸여 집 근처 거래 은행을 찾았지만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던 지점은 사라지고 없었다. ‘은행 지점이 주변에서 사라진다는 소리를 듣기는 하였지만 나도 영향을 받네!’라면서 동네를 돌아보니 기억 속에 다섯 곳이나 되었던 시중 은행 지점이 두 곳만 남아 있었다. 

하는 수없이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쯤 떨어진 거래 은행의 또 다른 지점을 십오 분가량 걸어서 갔다. 벚꽃 핀 봄날이라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십오 분정도 거리에 지점이 두 개나 있었다니 과했네, 잘 없앴다!’ 걷는 동안 나는 참으로 관대한 고객이었다.

그런데 지점에서 이런 나의 관대함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금요일 오후라고는 하지만 창구 직원을 만나 보는데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경비 줄이자고 지점을 지네 마음대로 없애!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거야?’ 변덕하고는...... 물론 변덕을 부린 데는 “개인연금보험은 만기가 되었다고 찾는 게 아니고 이름 그대로 연금처럼 일정 기간 분할하여 받는 것입니다. 일시에 찾자면 그간 공제받은 세금 때문에 원금도 다 못 찾습니다.”라는 은행 직원의 똑 부러진 설명(가입 때 들은 기억은 없지만 이는 나의 박약한 기억력 탓이리라.)도 한 몫을 하였다.

흥미로운 일은 달포쯤 후 그 변덕이 나로 하여금 다시 개인연금보험을 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경험으로 발길을 은행이 아닌 우체국으로 돌렸지만. 지난번처럼 휴가를 내고 찾은 우체국은 집에서 걸어 오 분 거리에 건재하였다. 그리고 은행과는 대비될 정도의 기다림 끝에 직원을 만나 일을 보았다. ‘우체국 참 편리하구나!’를 외치면서.

ICT 발달에 따른 대체 수단 일반화로 우체국이나 은행 서비스에서 대면 채널의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은행 지점이 속속 사라고 있으며, 우리 동네는 아니었지만 우체국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고 순리에 따른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속도와 정도에서 은행과 우체국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720개로 최다였던 시중 은행 지점은 2015년 4,311개로 409개(8.7%) 감소하였다. 반면 우정사업본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3,710개로 최다였던 우체국은 2014년 3,542개로 168개(4.5%) 감소하였다. 시중 은행 지점에 비해 우체국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 줄어들었다.

물론 금융서비스만 제공하는 은행과 우편서비스도 함께 제공해야 하는 우체국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역 분포에서도 은행은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과 광역시 등 대도시에 80% 가까운 지점이 있는 반면, 우체국은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 50% 이상 있는데 이는 은행 지점과 우체국의 설치에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러나 사라짐의 속도와 정도, 지역 분포 등은 우체국이 은행에 비해 대면 채널의 개폐에 훨씬 다양하고 강한 제약을 받고 있음을 짐작하게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짐작은 정부기업으로 경영되는 우정사업의 보편적 서비스 제공 의무를 상기하면 한층 선명해 진다. 의무를 따로 운위할 필요 없이 우체국이 주변에 있기를 원하는 ‘나’를 포함한 지역주민의 강한 바람만 보아도 우체국 개폐는 간단치 않은 일이라 하겠다.

ICT 발달에 따른 대체 수단 일반화로 우편사업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다소라도 해소하기 위해 일부 우체국을 폐쇄하는 것은 검토할만한 일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 지역주민이 얼마나 호응하느냐이다. 작년 11월 24일 개최된 선진우정포럼 이슈토론회에서 가톨릭대학교 김용철 교수가 한 발표에 따르면 일반 국민에게 우편사업의 재정적 어려움을 상기시킨 후 ‘요금 인상’을 위시한 여섯 개의 대안을 제시하고 선호 정도를 물은 결과 가장 호응이 저조하였던 것이 ‘우체국 숫자를 줄이는 것’이었다. 누구나 주변에 우체국이 있어 ‘참 편리하구나!’를 외치게 될 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현재와 같은 속도와 정도로 밖에 우체국을 줄일 수 없는 것은 직면한 사업 환경을 고려할 때 사업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우체국 서비스의 급속한 악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참 편리한 우체국’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일부 호사가들이 종종 공공 서비스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 “세금으로 하는 일이 이래서 되겠어?” 그러나 우체국은 아직까지 스스로 번 돈으로 운영되며 세금이 쓰이지 않는다. 전문가연(專門家然)하자면 “특별회계로 운영되는 우편 및 우체국예금 사업은 일반회계로부터의 보조가 없다.”라는 것이다. 자랑이라면 자랑일 수 있지만 사업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역주민 요구에 부응해야 해서 우체국 개폐가 제약되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자랑거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편리한 우체국’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일부 호사가들이 당연시 하고 있는 것처럼 세금으로 조금 도와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는 것이다. 

작년 선진우정포럼의 김용철 교수 발표에서 우편사업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응답자들이 가장 강하게 선호하였던 것이 ‘세금 투입’이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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