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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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사회, 투명 인간

  • 작성자손상영  연구위원
  • 소속ICT전략연구실
  • 등록일 2017.01.09

2017년은 우리나라에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된 지 20년이 되는 해가 된다. 실제로 초고속 인터넷의 상용화는 1999년에 ADSL과 케이블 모뎀이 보급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으나 초고속 인터넷의 도입에 관한 정책은 1997년에 결정되어 그 이듬해 발표된 ‘Cyber Korea 21’이라는 국가정보화 전략의 핵심내용이 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정부의 공식 문서에 ‘인터넷’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적이 없었던 만큼 그 당시 초고속 인터넷의 도입은 파격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초고속 인터넷의 도입은 지극히 당연한 당면과제지만 그 당시에는 큰 모험이었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전략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은 크게 효율성과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효율성의 달성은 단순 전산화 이상의 방법론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투명성은 전산화와 데이터베이스화만으로도 쉽게 달성되었다. 즉 과거 종이 문서에 남기던 현실 세계에서의 행위에 대한 기록들이 디지털화되어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지고 이것들이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체계화되면 나중에 그 기록들은 손쉽게 검색되고 처리될 수가 있기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 기록된 모든 행위들은 투명해진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의 투명성은 때로는 민초들의 삶을 옥죌 수도 있다. 가상적인 예를 들어 보자. 선량한 시민들도 장시간 시내에서 운전하다 보면 부주의에 의해서 여러 번 교통법규를 위반할 수 있다. “To err is human,”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인간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계가 아닌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경찰이 운용하고 있는 CCTV 시스템을 완전히 가동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모든 차량을 추적하고 분석한다면 대부분의 교통법규 위반을 적발할 수 있고, 모든 적발 건에 대해서 처벌한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벌점 초과로 면허를 상실하고 범칙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경찰이 카메라에 의한 과속 단속의 강도를 조절하기는 하지만 위와 같이 철저하게 법을 집행해서 파국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단속의 목적이 운전자 처벌이 아닌 교통사고 예방에 있기 때문이다. 
     
교통법규도 과거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기 이전 투명성이 낮은 시절에 만들어진 규정이다. 이것을 투명성이 향상된 오늘날에도 규정대로 집행한다면 커다란 혼란과 불안이 초래될 것이다. 따라서 법 집행에 있어서 운영의 묘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투명성 제고를 반영한 규제 완화로 시민들의 불안감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규제자가 손쉽게 모든 법규 위반 건들을 정보시스템으로부터 내려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낡은 법규에 의하면 규제자의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규제자는 할 수 없이 법규를 집행하게 된다.

이제 개인의 행동에 관한 투명성이 높아진 만큼 개인에게 자율성 또는 자기 규제권을 부여함으로써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에 투명성이 높은 실리콘 밸리의 인터넷 기업들, 국내 일부 인터넷 기업들은 자율적인 근태문화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현실에서의 행위가 사이버 공간에 기록되면서 투명성이 제고되었을 때 투명성이 낮은 시절에 만들어진 규제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논의해 보았다. 정보사회를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다면, 전기는 현실공간에서의 행위들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고, 후기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사결정이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실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인공지능을 갖춘 자율주행차나 로봇들을 들 수 있다.

모형과 연산 그리고 데이터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하는 인공지능과 때로는 인지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의사결정을 하는 인간이 공존하는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또 가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현재 수준의 자율주행차가 토요일 12시경 서울의 강남 한복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인간 운전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눈치 보면서 적당히 끼어들고 신호위반 하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지만 자율주행차는 교통법규를 준수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눈치라는 개념도 인공지능에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갓 운전면허를 딴 초보 운전자가 복잡한 강남에 차를 몰고 나온 것과 같다.

후기 정보사회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즉 인간과 사이버적 존재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양자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유사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규칙을 잘 지키고 기계의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인간의 본질이 아님이 현대철학에서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로봇과 같은 사이버적 존재들이 ‘눈치’나 ‘편법’과 같은 인간적 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컴퓨터 너드(nerd)들은 그런 눈치가 얼마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들은 어쩌면 인공지능에 눈치를 장착하기 보다는 눈치나 편법이라는 것을 부조리하고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고 현실세계에서 눈치 보고 법을 어기는 인간을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존재가 없는 인간, ‘투명 인간’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치와 편법이 우리를 지켜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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