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나는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고 막연히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내가 과학도의 길을 지나 경제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금에서야 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인공지능의 발전은 생각보다는 더뎠던 것 같다. 이론적인 측면보다도 이를 실현할만한 컴퓨팅 파워 등의 발전이 지체됨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알파고로부터의 충격에서도 모두가 느꼈듯, 특정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은 이제 AI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공학적인 문제와 사회과학 분야에의 적용은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AI가 우리 삶의 영역으로 들어와 AI가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한다면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사회질서가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AI가 경제적 주체(economic agent)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AI-nomics”의 시대가 도래할 때 어떤 변화가 예상되고 이슈가 발생할지 상상해 본다.
경제학에서는 각 경제주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상황을 게임이론이라는 분석툴로 모형화하고, 보상체계에 따른 각 주체들의 인센티브와 전략 등을 분석한다. 게임이론은 기본적으로 개별 주체가 합리적(rational)이라는 매우 강한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이로 인해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못한 인간들의 행동과 실제 경제상황을 설명하는데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에 각자의 정보가 불완전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정확히 업데이트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적의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또한 아예 특정 상황에서의 개별 주체의 합리성을 배제하는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통해 설명력을 높이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게임이론으로 묘사되는 경제활동의 한 플레이어(player)로 편입되는 경우는 어떨까? AI가 – 비록 발전단계에 따라 수준은 많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 인간에 비해 빠른 정보처리와 더 정확한 기억장치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더 합리적인 경제적 주체로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사람에 비해 AI는 더욱 최적화된 선택을 하고 항상 승리하는 결과가 도출될까? 아니면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양식으로 인해 항상 그렇지만은 않을 것인가?
AI 간의 게임은 어떻게 될까? 여러 AI가 상호 공존하는 균형이 도출될 수 있을까? 이는 AI 간 능력치(컴퓨팅 파워 및 학습 알고리즘의 효율성 등)가 유사한 경우에만 해당될까? 거의 동일한 데이터를 서로 다르게 학습함으로써 AI들이 서로 다른 전략을 택하는 것이 균형으로 서포트될 수 있을까? 이는 AI의 시대에도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약 이런 균형이 서포트되지 않는다면, AI들 간에도 능력치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가장 강력한 AI가 모든 것을 평정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인가?1)
이처럼 AI의 발전과 함께 점점 적용범위가 확대되어 갈 때 수반되는 질문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의 등장이 – 과도기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 경제 이론과 실제 현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각 AI가 최선의 선택을 한다면 사회후생이 늘어나 인간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서로의 몫을 빼앗는 제로섬 게임에서 가장 큰 능력치를 갖는 AI가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할 것인가? 이 경우 AI를 (그리고 AI를 보유한 자의 선의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AI가 경제적 주체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경우 인간의 역할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AI 간 공정한 거래를 위한 조정 및 규제가 필요할 것인가?
AI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기술로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AI의 활성화와 함께 경제학계에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AI의 확산범위 및 발전 속도 등에 따라 어떤 질문(연구주제)이 적절한가부터도 생각하기 쉽지 않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달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도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와 AI의 본격화에 따라 새롭게 재편될 산업 및 경제계의 큰 그림을 전망해보고 이를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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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 출현하는 경우 최초로 나타나는 초지능이 경제를 비롯한 모든 사회영역을 (개발자 외에 다른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채) 통제할 것이라는 전망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