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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이학기

기다림의 가치

  • 작성자이학기  부연구위원
  • 소속ICT전략연구실
  • 등록일 2019.05.21

최근 미국의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이 서울 성수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개점 당일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날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적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다섯 시간까지 기다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커피 한 잔을 사들고는 파란색 병이 그려진 커피 잔이 담긴 사진을 ‘#블루보틀’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개인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 구매 인증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동을 한다. 슈퍼마켓, 은행, 우체국, 식당, 카페 등에서 소비 활동을 위해 줄을 선다. 기다리는 시간을 비용이라고 한다면, 어떤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해당 제품의 가격에 기다림의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 활동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선까지 기다리는 것이 효율적일까?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 개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기다리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커피 한 잔을 위해 다섯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마치 과거 사회주의 경제체제 하의 동구권 국가에서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섰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블루보틀 커피를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에 다른 많은 대체제가 널려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경우 사람들은 블루보틀의 개점 소식을 듣고 찾았다가 대기 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주변의 다른 커피 전문점으로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블루보틀 커피 한 잔이 주변의 다른 커피 전문점의 커피 한 잔 보다 다섯 시간의 가치만큼 더 맛있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비 행동(매우 오랜 기다림)을 하는 것일까?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개인의 소비 결정에 있어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염두에 둔 제품을 좋아하는지 혹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핫 플레이스’인지가 소비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는 제품 자체에서 얻는 효용 외에도 대중적인 제품을 소비하는데서 얻는 효용이 존재하는 것을 보여준다. 즉,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의 수요가 증가하는 형태의 수요와 선호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에 있어서 이러한 형태의 의사결정은 매우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으로 귀결될 수 있다. 즉, 대중적 제품의 소비에서 얻는 효용이 기다림의 비용을 상쇄하여 시간이란 자원을 더욱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우리나라의 롯데월드에서 가격을 차별하여 티켓을 판매하는 방식이 앞선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좋은 대답이 될 수 있다. 이들은 개인마다 다른 기다림의 가치를 구간화하여 가격에 반영하는 식으로 가격차별을 하고 있다. 개인이 느끼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전부 가격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몇 개의 가격 구간을 설정하고, 이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시간은 없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기다리는 대신 정상 가격의 3배를 받고, 시간과 추가비용을 등가교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줄을 서는 대신 정상가격만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효율성만을 고려할 때, 이런 방식의 가격차별은 꽤나 유용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이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알아서 거품이 빠지고 균형에 도달하여 줄서기가 상당부분 줄어들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는 확실치 않지만, 기다림의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부서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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