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덧 2004년도 새해라는 말이 어색하리만큼 한달을 훌쩍 넘기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낮으로는 때이른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풀린 듯 하다. 겨울이 가고 어김없이 또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순리에 감탄하면서 조금은 성급하게 봄을 맞이해 본다.
아직 학생시절의 습관이 남아서인지 요즈음의 날씨는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며 설레어 하던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말에는 몇 달을 별러 오던 책장 정리를 했다. 한번 내손에 닿았던 물건에는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잘 버리지를 못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번에는 꼭 제대로 정리를 하겠노라 다짐하며 많은 것들을 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월의 경과를 말해 주듯 색마저 약간은 바래버린 다이어리를 하나 발견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에는 예나 지금이나 익숙하지 못한 탓에 1월과 2월 2, 3일 정도의 간격으로 드문드문 쓰여지다 이후로는 원형 그대로 색만 변해버린 일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아직 약간은 서늘한 봄바람을 느끼며 그 시절로 돌아가 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본다.
1995년 왠지 길게만 느껴지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기다리며 지내던 시기였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미팅도 하고 예쁜 여자친구도 사귀고, 여행도 많이 하고 또 아르바이트도 해서 돈도 벌고 싶다는 등등의 작은 소망에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른바 ‘사’자로 지칭되는 좋은 직업을 얻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 희망하는 조금은 큰 것들 까지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부푼 설레임으로 써내려간 나름의 미래 계획들이 빼곡하다.

하지만 어느 남성 듀오가 불렀던 유행가 제목처럼 10년 전의 일기를 꺼낸 것인데, 그 시절 그 꿈들 중 지금에 실제 이룬 것이 몇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또 몇인지를 돌이켜 보니 이루지 못한 것이 대부분인 듯 하여 씁쓸한 마음이 든다. 최선을 다하지는 못 했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뚜렷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의기소침해 진다. 문득 ‘성공하는 사람은 시간을 관리하는 자이고, 실패하는 사람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자이다’라는 어디선가 본 듯한 문구가 떠오른다. 지난 10년의 내 모습이란 그저 순간순간 충실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을 뿐 적극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며 계획적으로 인생을 설계하며 살지는 못한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약간의 후회는 어쩔 수 없지만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10년 전 일기를 통해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앞으로 10년 후 또 20년 후, 30년 후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할 만큼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노래 속 후렴구가 귓가에 맴돈다. ‘내겐 더 많은 날들이 있어 무슨 걱정이 있을까?’ 다시 한번 올 한해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능력과 실력을 갖추기 위해 한 발 더 빨리 그리고 많이 뛰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