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분 후에 회의합니다. 모두들 모이세요.”
으...또 회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여태까지 진행상황들을 챙긴다.
CD제작업체에서 오늘까지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부랴부랴 CD업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와 예상비용, 예상시간, 디자인 등을 논의한다.
통화내용을 메모한 뒤 후다닥 회의실로.
“자, 각 팀별로 진행상황 보고해주세요. 먼저 홍보팀 말씀해주세요.”
“네, 포스터와 초청장 제작완료했고요, 1차 배포도 끝난 상태입니다. 그 외에......”
“좋습니다. 다음 자료집팀? CD제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아, 네... CD 겉표지와 플래시 시안을 내일 오후까지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우리 쪽에서 자료 목차를 만들어주면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일의 진행도 빠르다고 합니다. 500장 제작할 경우 ooo 만원이고요, 1000장의 경우 xxx 만원입니다.”
우리실에서 준비하는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메가트랜드 심포지엄 준비로 실 전체가 분주하다. 홍보팀, 공간팀, 데스크팀, 자료집팀 등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각자의 진행상황을 보고하며 추가적인 일들을 논의한다. ‘10월 말이면 아직 한참 남았네’라며 여유를 부렸었는데, 늘 그렇듯 시간은 쏜살같고 칠판에 적힌 ‘D-o일’은 어느 새 한자리 숫자가 되었다. 더군다나 금강산으로 한마음전진대회를 다녀온 후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이건만 우린 한가롭게 금강산의 감상들을 나눌 여유조차 없었다.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의 회의를 하며 진행상황을 보고하고 변경사항들을 논의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일들은 거의 없다. 1안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변수가 생겨 2안으로 수정을 하고, 그러다 다시 1안으로 복귀. 다른 팀들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내가 맡은 CD제작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분야별로 단순하게 자료를 분류하려던 계획에서 분야별로 하되 전체 메가트랜드 사업을 소개하고 년도별 특징도 넣으면서 년도별+분야별 분류로 바뀌게 되었다. 시간은 부족한 상황에서 디자인이 여러 차례 바뀌게 되고, 겉표지와 제목도 여러 번 바뀌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더 나은, 후회없는 심포지엄을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드디어 심포지엄을 하루 앞두고 최종 점검 회의를 했다. 다들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회의실로 들어왔다. 모든 상황 준비완료. 다음 날 늦잠자지 않고 아침 일찍 심포지엄 장소로 출근하는 일만 남았다. 게다가 나는 이번 행사의 사회를 맡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처음에는 별로 부담을 가지지 않았는데, 막상 행사 전날이 되니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옷은 어떤 것을 입어야 하지? 셔츠 블라우스에 딱 떨어지는 정장? 검정색을 입을까 아니면 밝은 색으로 입어야 하나? 머리랑 화장은 어떻게 하지? 멘트도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일찍 집에 들어가 다음 날을 위한 준비를 하려했지만, 어디 세상 일이 생각처럼 진행되던가. 다른 일들을 좀 챙기고 하다보니 어느 새 시계는 열시 십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사회자 멘트를 몇 번 읽어보는 것으로 준비를 마무리해야 했다.
“따다다다다다다” 매정하게 우는 자명종을 가까스로 끄고 졸린 눈을 비비며 심포지엄 행사장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동이 터오는 것을 보며 집을 나섰다.
행사장인 ㅈ호텔. 미래실 식구들 모두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청중들이 많이 오려나’라는 우려와 달리,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등록 데스크 앞에 북적였고, 발표자료 준비와 자리 세팅, 그리고 의전 준비 등으로 모두들 정신없이 움직였다. 한 쪽 귀에 무전기를 꽂고 서로의 임무를 확인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보디가드나 CIA 요원을 연상시켰다. 얼마나 전문적으로 보였으면 청중들이 “이벤트 전문회사에서 나왔어요?”라며 물어봤을까.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동원된 청중이 아닌 메가트랜드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온 청중들이 많았으며, 점심 식사 후에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경청하는 청중들이 많았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친 것도 감사한 일인데, 청중들의 호응을 얻으며 막을 내릴 수 있어서 더욱 감사했다. 자료집과 CD도 인기였다. 사회자로서의 역할도 무난하게 해냈다. 세션별 제목들이 모두 IT, 미래, 한국, 비전, 전망 등등이 혼합되어 있어 가끔 발음이 꼬이기도 했지만 큰 실수없이 마친 것으로 만족한다.
손님들이 다 떠나고 난 행사장을 바라보며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난 몇 주 동안 행사준비로 정말 정신없었던 시간이었지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노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미래실의 소중한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흔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맞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회사는 경쟁관계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고 서로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연구원이라는 기관이 다른 회사와 성격이 조금 다르기도 하거니와 가족같은 우리실의 분위기 때문인지 각자의 일이 바쁘면서도 서로 기꺼이 도와주며 함께 일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만 밝은 미소를 잃지 않던 그 모습도.
심포지엄을 준비하는 시간이 입사 이래(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우리실 구성원들 간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 듯하다. 그리고 내가 미래실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