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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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과 한마음 전진대회 그리고 금강산

  • 작성자김철완  연구위원
  • 소속정보통신북한연구센터
  • 등록일 2005.10.24



“야!!! XX 너무 좋다!” 상팔담 정상에 선 나에게 들리는 진한 감탄, 우리 한마음 전진대회에 다른 팀으로 이번 금강산 관광에 함께 인연이 된 내 곁에 선 어느 청년의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렇다. 나도 그랬다. 산과 인연이 없는 몇몇 직원은 이번 대회에 시큰둥한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이나, 그러나 나는 그렇게 너무 좋았다.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와는 아무 상관없고 소설이나 시에서나 쓰이는 것이라고만 치부했던 표현이 이 순간 어찌 이리 나한테 꼭 맞을까. 그 순간은 다음 날 천선대로 이어졌으며 망양대에서도 그 순간들은 역시 새로운 감동이었다. 생각해 보면, 높은 산 넓은 허공과 늘 함께하는 나로서는 특별히 감동스러울 것도 없을 그 많은 산행 중의 하나가 이렇게도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고 올 수 있는 산이 아니었고, 그 아름다움을 반세기가 가까워오도록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참으로 보고프던 금강산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보다 더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또 하나의 나의 땅에 사는 내 몸과도 같다할 이들을 실제로 접하는 나의 마음이 마치 부모 말 안 듣고 제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집을 박차고 나가 제 멋대로 사는 가운데 빈털터리가 다된, 맥이 다 빠진 자식을 원행(遠行)의 도상(途上)에서 마주치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눈앞에 안보일 땐 꺼지지 않던, 왠지 모를 커다란 미움이 눈앞에 나타나니 천만리 떨어져 전도(顚倒)된 측은지심(惻隱至心)으로 그저 어서 배불리 먹이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순식간에 변하며, 부모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자식 그리고 내 팔자에도 없는 그러한 가엾은 자식을 대하는 듯한, 내 가슴에는 정녕 쓰라린 뭉클함이었다.

어쨌거나, 돌이켜 보면, 내가 오늘 이렇게 상팔담 정상에 서서 벅찬 환희를 맛보는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82년에 시발되었고, 이는 그 때 처음 5공 정부에 의해 발의된 남북간의 경제협력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남북경협이라는 시절의 인연이 아직 먼 곳에 있던 때라 북측은 그 만큼의 무관심으로 포장된 의심의 눈길로 남쪽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동시에 남한 수해지역 쌀 지원 등으로 남쪽의 인심을 얻으려는 등 북측의 대응은 양극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편, 남쪽의 정치 상황 역시 군부독재 철폐라는 민주화 운동 등으로 인한 소요로 남북경협이 구체적인 실행 없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88올림픽 직전 6공 정부에 의해 남북경협을 위한 7.7 특별선언과 곧 이은 10.7 대북한개방조치 발표에 의해 남북경협은 다시 촉발되기 시작하였으나, 그조차도 10년이 조금 더 지난 후인 ’98년 11월 8일에야 비로서 해로를 통한 금강산관광 인연으로 이어졌으며, 이 역시 거의 5년의 테스트를 거친 상호 신뢰를 통해 드디어 ’03년 9월 육로를 이용한 관광으로 발전되어 말로만 듣던 금강산관광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남북경협이 우리 모두에게 피부에 와 닿은 것은 금강산관광이 현실화 된 이후이고 특히, 육로 관광이 실현되고부터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금강산 육로관광은 남북경협이 실제로 육로를 통하여 개성공단으로 까지 더욱 증폭되는 인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천-개성-서울로 이어지는 물류(수출입), 생산과 기술 및 소비 등 삼각구도 형태의 전략기지로도 발돋움할 수 있어 한반도가 동북아 중심국으로서의 야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나의 관심이 보다 집중되는 부분은 금강산관광 인연이 현재 우리에게 한반도 통일 즉, 남북간의 도(道, 길)를 트는, 사람이 思量할 수 없는, 중요한 話頭가 되어있으나 정작 우리 모두는 그것도 모른 체 큰 나라가 될 인연의 도(道)를, 각자는 자신이 즐기기 위해 또는 그냥 금강산을 보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각기 한마음으로 그리고 열심히 닦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특히 흐뭇하다 못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는 비단 남북경협의 일단을 수행하는 나의 현재의 직무 중에 금강산 관광이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 경제, 군사 등등의 측면에서도 금강산에 얽힌 세계적 가치 또한 작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논하자면 책 한권도 모자라겠으나 어쨌든, 그리웠던 금강산 그리고 다녀 온 지금에도 다시 그리운 금강산이 도대체 무슨 화두(話頭)이길래 남과 북 각자가, 깨닫고 보면 모두가 똑같은, 한 깨달음 즉, 남북의 도(道, 길)가 트는 속도와 폭을 이리도 빠르고 넓게 하는지 그 산이 진화해온 과거 수십억년에 얽힌 역사의 인연이 나에게는 큰 의심의 덩어리로 뭉쳐온다.

나무 아미타 불
나무 하나님
나무 알라


--* 약력 *--------------------------

+ 성균관대 영문학 학사
+ University of Pennsylvania 경영학 석사 전공 : (마케팅)
+ University of Pennsylvania 경영학 박사 전공 : (마케팅)
+ 1994.08 ~ 현 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1989.12 ~ 1994.08 : 美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경영대학 교수
+ 2002.11 ~ 2003.03 : 국제협력연구실 DGF-KTC 소장
+ 2005.07 ~ 현 재 : 국제협력연구실 정보통신북한연구센터 소장

  • 부서대외협력팀
  • 담당자신보람
  • 연락처043-531-4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