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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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온도의 빈 자리

  • 작성자한지연  연구원
  • 소속통신방송연구실
  • 등록일 2005.11.21

날씨가 추워진다. 겨울이 오려나보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훈훈해진다. 내가 추우니까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 불우이웃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날씨가 추울수록 인간세상이 따뜻해지는 그런 기분이 든다. 이맘때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온도 보존의 법칙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기온+마음온도'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상 말이다. 평소에 불우이웃 돕기로부터 효용이 제로였던 사람들마저  거리의 천사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추위랄까.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추위가 전년보다는 못한 것 같긴 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만 해도 첫눈이 11월에 내렸으나, 요즘은 11월 초가 꼭 10월 중순경의 날씨와 비슷한 것 같다. 나 역시 추위가 싫긴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따뜻해지는 날씨는 더욱 싫다. 겨울의 온도가 매년 높아가고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도 전과 같지 아니하다. 이웃 주민이 배고파 쓰러져도, 초인종 벨소리가 귀찮기만한 현대인이랄까. 온도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차가워질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사실은 차가운 현대인이기에 주위의 어려움을 못 본 척 한다는 비난 대신 온도 보존의 법칙 탓으로 비껴가려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전 지구적으로 적용되는 온도 보존의 법칙(물론 믿거나 말거나, 내 생각이다)이 나 개인에게도 적용됨을 발견했다. 가끔 내 마음의 객관적인(감정이 배제된) 온도는 기온과 화학반응을 하여 전혀 다른 무엇인가(총체적 우울함이라든지, 완전한 충만감이라든지, 감정이 동반된 그 무엇이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화학반응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나, 요즘 내 마음은 자꾸 날씨와 화학반응을 해버린다. 내가 예상하던 11월보다 훨씬 따뜻한 11월이 다가와서인지 내 마음은 차가워졌고, 그로인해 전혀 예기치 못한 다른 감정을 생성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여름이 되었다고 내 마음이 식고, 겨울이 되었다고 내 마음이 데워지는 것은 아니다. 파이로 비유해보자면 여름의 파이는 클 것이고, 겨울의 파이는 작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파이가 아무리 커도 상대적인 박탈감으로부터 비롯되는 빈곤함을 체험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 크기가 아닌 마음온도의 상대적 비중이다. 나의 경우 기온과 마음온도의 배합 정도에 따라 화학반응의 결과가 다른 데, 일반적으로 마음온도의 비중이 클수록 완전한 충만감이란 에너지를 창출하였다.

여름과 겨울의 나날 중 나의 마음온도가 공히 3도인 어느 날을 샘플로 뽑아보기로 한다. 화학반응을 하기 전에는 동일한 감정 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소나기, 기안의 3번째 반송 혹은 길바닥에서 돈을 줍는 것 등의 촉매를 만날 때 뜬금없이 내 마음은 기온과 갑작스레 화학반응을 해버린다. 이 경우 마음온도의 비중이 큰 겨울의 경우에 보다 따뜻한 인간적인 감정을 느낀다. (쓰고 보니 억지스런 측면도 있으나, 내 마음이니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물론 날씨가 추워지면 마음도 덩달아 외로워지는 사람들은 나의 온도 보존 혹은 온도 불변의 법칙에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헛소리의 카테고리로 벌처럼 직진하여 날아갈지도) 그러나 ‘마음온도가 높으니까 외로움도 느끼는 거다'라고 한다면? 마음온도가 높아지니까 마음이 추운 것도 느끼고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나 역시 겨울이 되면 ‘겨울 -> 크리스마스 -> 눈 -> 연인->....' 이러한 연상 작용을 거치며 형체도 모를, 만약 있다면 검은 고양이의 형체를 띤 외로움이란 것이 나의 높은 마음온도에 들어와 부글부글 끓어 미친듯이 날뛰다가 마음온도가 낮아지면 사라져버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11월 초순에 잠잠히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마음 속에서 찬바람과 함께 서서히 뛰기 시작한다. 순전히 날씨 탓이다. 온도 보존의 법칙의 등장이 의문스러울 수도 있으나, 나만의 미시적 슬픔을 지구온난화의 환경문제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온도 보존의 법칙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몰상식한 등장은 아니며, 오히려 장미꽃 날려 환영해야 하는 등장인 것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내가 느끼는 외로움도, 한반도가 겪는 겨울도 잃어버리게 되면 어쩌지?

갑자기 차가워지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앞도 뒤도 정신없이 나다니는 생각(이 시간에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나니 정말 두서없다)을 해보며 마지막으로 모두 행복하게 2005년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처음으로 학교가 아닌 직장을 다니게 된 2005년이 의미 있는 해로 각인될 것이다. 통신시장을 연구하는 것 외에 화학반응이 일어나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노하우를 습득해가며 후회보다는 반성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더욱 진지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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