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9월11일에 나는 흔히 카투사로 일컬어지는, 미군부대에 파견나가 있는 한국군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나는 마침 휴가 9박10일중 이틀인가를 남기고 빈둥거리고 있다가 컴퓨터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친구는 TV를 보고 있었는지 뉴욕에서 비행기가 WTC에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 때만해도 난 그저 우연한 사고였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TV를 켜는데 한마디로 뭐라고 형용할 수없는 엄청난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난 휴가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출을 받고 부대로 바로 복귀해서는 거의 한 달이 넘도록 비상 경계령 속에서 살아야했다. 거의 첫 일주일간은 하루 종일 경계 근무를 서다시피하였고, 사건 후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경계령이 다소 완화가 되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9.11테러로 인해 희생된 사람의 수가 총 3,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테러에 대한 후속 조치인 이라크 전쟁으로 비공식적인 집계이지만 1만 5천명이 넘는 민간인 및 군인이 희생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나도 얼마간의 피해(?)를 보긴 했지만 희생자들이나 유족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어가야 했으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어떤 이들은 종교적 문제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중동의 석유 채취에 대한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파워게임이라고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미국의 중동에 대한 간섭에 대한 경고 및 보복이라고도 한다. 물론 어느 한 가지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이런 증오와 반목, 폭력과 응징의 역사는 수백 년 전, 아니 수천 년 전에도 오늘날과 똑같이 존재하였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무수한 이론들이 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본성은 아마 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판도라의 상자를 엶으로써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악하거나 이기적이라고 해서 그 상태 그대로 둔다면 이 사회는 동물들의 약육강식의 세계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교를 믿으며 이웃을 사랑하고, 복수대신 용서를 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인류가 서로의 욕심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액슬로드라는 사람이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일종의 게임이론에 대한 시뮬레이션 실험인데. 수십 개의 팀들이 서로 각자 나름대로의 전략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한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상대방과 협력하거나 배신하는 것 두 가지이다. 그러면 두 팀이 맞붙을 경우 네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둘 다 협력하는 경우, 내가 배신하고 상대방은 협력하는 경우, 내가 협력했지만 상대방이 배신하는 경우, 둘 다 배신하는 경우. 둘 다 협력하였을 때에는 두 팀 모두 점수를 얻게 되지만 만약 내가 협력을 했지만 상대방이 배신을 하게 되면 나는 점수를 얻지 못하고 상대방은 점수를 얻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둘 다 배신을 하게 되면 가장 낮은 점수를 얻게 된다. 그 액슬로드라는 학자가 이러한 형식으로 무수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물론 컴퓨터로 했다. 사람 손으로 하면 아마 몇 백 년은 더 걸릴지도 모른다) 이 실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얻은 팀의 전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Tit-for-Tat)"이라고 한다. 이 전략에 따르면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기 전까지는 항상 협력을 한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배신을 하면 나도 배신하다가 상대방이 다시 협력을 하면 나도 협력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전략의 핵심은 선함(일단 협력), 복수(상대방의 배신에 나도 배신), 용서(상대방이 협력으로 돌아서면 나도 협력)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이 Tit-for-Tat 전략 이외에도 나머지 전략들 중에서 ‘선함’을 주무기로 하는 전략들이 대체로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서나 다른 무수한 고전 속에서 이야기하는 자애와 자비가 결국 자기 자신과 모두의 번영을 위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낸 것은 아닐까? 오늘날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한 치 앞의 자기의 이익 때문에 상대방의 이익뿐만 아니라 훗날 자신의 이익조차 날려버리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단순한 사랑과 자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