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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을 보며

  • 작성자김윤희  위촉연구원
  • 소속국제협력연구실
  • 등록일 2012.09.24

17세기 초 네덜란드에 살고 있던 한스 리퍼세이라는 렌즈 연마공은 여러 개의 렌즈를 조합하여 처음으로 망원경이라 불릴만한 도구를 만들었다. 이를 알게 된 베네치아의 수사 사르피가 친구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고, 그는 얼마 뒤 네덜란드의 렌즈 연마공이 만든 것보다 세 배는 더 좋은 망원경을 만들었다. 그러자 나폴리의 자연철학자인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가 멀리 있는 것을 가깝게 보이게 만드는 그 장치는 원래 내가 발명한 것이고, 갈릴레오는 그 것을 개조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경우 망원경을 진정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누가 되는 것일까. 만약 리퍼세이가 망원경을 발명한 뒤 이를 네덜란드뿐만이 아니라 각 유럽 국가들에 특허를 신청하여 다른 이들이 더 나은 망원경을 개발할 수 없도록 금지하거나 높은 로열티를 내도록 의무화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지켜보며 망원경에 얽힌 옛 이야기가 떠오른 까닭은, 특정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권리를 한 개인이나 기업이 얼마만큼 주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지식은 무(無)에서 새로이 탄생하기 보다는 기존의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고 발명하고 다듬어온 거대한 지식의 산에 작은 먼지 조각 하나를 올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태는 그러한 먼지 조각 하나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그 먼지가 딛고 있는 산 전체에 대한 권리마저 한 개인이나 회사의 것으로 돌려버리는 듯하다. 특허, 지적재산권 등을 규정하는 이 분야 법률체계가 아직 미완성 단계에 있고 국제적 차원의 합의는 더더욱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열외로 하더라도, 삼성과 애플이 벌이고 있는 특허 전쟁은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공생의 미덕을 잊은 자본주의적 이기심의 충돌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지켜보는 많은 관찰자들은 이러한 특허 관련 분쟁으로 인해 ICT 분야의 혁신이 더뎌지고, 경쟁력 있는 신 벤처 기업들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미 대기업들은 혁신과 새로운 기술 개발에 힘쓰기보다는 경쟁적으로 특허를 신청하고, 중소기업들이 보유한 아이디어나 특허들을 사들이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실용화될 경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좋은 아이디어나 기술들이 이러한 기업 간 경쟁에 휘말려 그 가치를 매장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삼성과 애플의 소송은 이러한 물밑 경쟁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국제사회와 관련 시장 행위자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향후 ICT 산업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허 경쟁과 법적 소송으로 인한 비용을 감소시키고, ICT 산업 내 지속적인 혁신과 경쟁을 보장하는 건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

필자는 고민 끝에 다소 순진해보일지 모르는 한 대안을 떠올렸다. 바로 문학, 예술 분야 및 학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각주(reference)’이다. 이르게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갈 수 있는 지식의 소유권에 대한 논쟁은 16-17세기에 이르러서야 적절한 타협 방안을 찾게 되었다. 누가 원저자(原著者)이며 진정한 지식의 소유자인지를 가리기 위해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해당 정보나 지식이 담긴 참고서적의 제목과 저자명을 기재하여 기여한 바를 인정해주고 당 저자는 그를 기반으로 더 나은 지식을 만듦으로써, 모두가 득을 보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통해 수많은 저자들과 학자들은 계속하여 인류에 유용한 지식을 양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지적 산물이 많은 이에 의해 활용되고 거론되는 학자일수록 더욱 인정받게 되는 풍토까지 조성될 수 있었다.

각주는 먼저 지식을 가진 자와 나중에 가지게 된 자 간의 일종의 약속이다. 특허 역시 먼저 그 지식이나 기술을 개발한 자에 부여된 권리로서, 특허 보유자는 정당하게 공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로열티 금액을 낮추어 다른 기업들이 그 소재를 밝히고 해당 기술이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 전체적으로 편익과 효율성이 증가하게 되고, 해당 기술 및 지식을 보유한 기업은 그 기여도를 인정받아 긍정적 이미지와 명성을 높이게 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지식은 신의 선물이다. 따라서 팔릴 수 없다.’ 비록 오늘날과 같이 뿌리 깊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더 이상 지식이 신의 선물과 같은 신성한 지위를 가지지 못하지만, 적어도 어떠한 지식이 탄생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이에 깃든 많은 사람들의 기여를 생각함으로써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작금의 치열한 특허 전쟁에 평화를 불러올 실마리 정도는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부서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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