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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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이전, 돌아보기

  • 작성자황슬하  인턴연구원
  • 소속방송미디어연구실
  • 등록일 2014.08.12

얼마 전, sbs에서 ‘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라는 주제를 다룬 다큐가 방영되었다. 대략 2,3년 전부터 소위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라는 개념이 학계에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고, 최근에는 국내 입법화 논의가 이루어지며 미디어에서도 이를 주목하게 된 모양이다. 잊혀질 권리는 마이어 쇤베르거의 저서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로, 법적으로는 ‘정보의 생성, 저장, 유통 과정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 관련 정보의 유통기한을 정하고 삭제 및 수정,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로 정의되며, 유럽에서는 이미 유효한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잊혀질 권리가 디스토피아 소설 속에 등장할 법한 이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질적 권리로 주목받게 됨에 따라 이에 대해 좀 더 성찰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과 삶의 유한성이라는 ‘실존적인 조건’ 앞에 미디어를 통한 삶의 기억과 기록은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방식을 확고히 해 나가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인간은 문자혁명에서 시작해 인쇄혁명, 디지털혁명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유한성, 즉 망각과의 전쟁을 통한 소위 ‘기록혁명’을 이루어 온 것이다. 웹, 클라우드 환경 등 정보가 축적될 수 있는 무한한 공간과 정보에 대한 유연한 접근가능성이 확대된 지금, 최첨단 기록 시스템으로 무장한 미디어는 기억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넘어 완벽한 기억을 가능케 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망각과의 오랜 전쟁에서 인간의 승리를 의미하는가?

오히려 완벽한 기억과 기록이 개인에게 새로운 내일을 살아갈 자유를 빼앗아 간 사례들이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과거 SNS에서 농담 삼아 했던 언급으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어린 시절의 실수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을 미치고, 전 애인이 올린 과거 연애 사진으로 인해 결혼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잊혀질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넋두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에 적극적 권리로서 잊혀질 권리의 필요성이 역설되고, 과거 기록을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업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궁금한 것은 이러한 권리를 필요로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이다.

언제부터인가 개인은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해왔다. 자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글, 사진, 동영상의 형태로 언제, 어디서나 SNS에 기록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온 것이다. 자신이 직접 올린 콘텐츠의 경우, 비교적 삭제가 용이하지만 나의 글을 누군가 스크랩, 복사, 리트윗, 캡처하여 유포하였을 경우나 남의 글에 단 댓글을 단 경우, 이를 추적하여 삭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즉 일단 SNS상에 노출된 정보는 삭제되기 매우 어렵고, 이에 따라 이러한 정보에 대한 개인의 통제력은 더욱 미미해지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제공된 정보들이 타인에 의해 악의적으로 재구성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개인정보 조각들을 수집·재구성하여 또 다른 구체적인 개인을 재구성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과거로 인해 고통 받고 잊혀질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SNS 및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다수의 이용자에게 해당되는 일이 될 수 있다. 완벽한 기억의 저장과 기록은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 기록의 주체가 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온라인상의 개인기록을 지워준다는 명목으로 새롭게 등장한 비즈니스 모델인 디지털 세탁업, 개인의 정보통제권으로서의 잊혀질 권리 모두 중요하지만, 이런 거시적인 논의에 앞서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것은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허공에 뱉고, 그 말들을 주어 담으려 노력하고, 또 그것들을 주워 악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잉기억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잊혀질 권리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이전, 이러한 권리를 필요로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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