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제학의 기본 아이디어는 흔히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이라는 아담 스미스의 표현으로 압축된다. 개개인들이 사회 전체의 움직임에 대해 신경쓰거나 걱정하지 않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데도 혼란과 무질서가 일어나지 않고 잘 굴러가는 것에 대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숨어서 조정을 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기능 혹은 시장원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으나, 특히 적극적으로 이를 현실에 적용하고자 하는 입장이 소위 시카고학파, 유럽식 자유주의 또는 미국식 보수주의라고 하겠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도 통칭되는 듯하다. 이 입장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대다수 영역에 민영화 와 시장원리 도입을 추구하며 일부 부작용(?)에 대한 처방으로 투명한 지배구조 및 재산권 확립을 제시한다.
한편, 이와 상당히 대비되는 입장도 존재하는데 이를 ‘도와주는 손 (helping hand)'이라고 할 수 있다. 도와주는 손의 추종자들의 레퍼토리는 ’시장 실패‘이다. 독과점의 폐해, 외부 효과, 불확실성 등으로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보이지 않는 손이 주장한 바와 달리 실업, 불황, 경제 위기 등의 혼란과 무질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와주는 손이 필요하다. 바로 정부이자 정부의 정책이다. 이것이 20세기 전반부 경제학을 뒤흔든 케인즈 혁명의 배경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 소위 케인즈학파, 미국식 자유주의(유럽 용어와 혼란을 피하자면 진보주의)이다. 대부분의 경제 정책-조세, 재정지출, 통화조절, 산업정책 등-의 기반에는 시장실패의 존재와 도와주는 손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이 깔려 있다.
이 입장은 정부의 다양한 개입 필요성을 인정하고 심지어 많은 부분에 공기업 등 국유화를 추진하며, 부작용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개입과 경제 기획을 처방으로 제시한다. 극단적으로는 많은 20세기 경제이론가들을 사로잡았던 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의 이상에까지 이른다. 사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손보다는 도와주는 손, 시장 자본주의보다는 시장 사회주의에 가깝다. 경제학도 진화하는 동물인만큼 이러한 양극단의 입장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제3의 입장이 바로 ‘자기 몫 챙기는 손(grabbing hand)'이다. (Shleifer and Vishny, The Grabbing Hand, 하버드대학출판부) 보이지 않는 손이 정부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상적인 생각이라면, 도와주는 손은 정부의 능력과 의지를 과대평가하는 이상적인 입장이다.
자기 몫 챙기는 손은 ‘시장실패’와 함께 ‘정부실패’ 또한 인정하자는 이론이라고 하겠다. 시장을 혼자 내버려 두어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정부 또한 내버려두면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는 극도의 선한 의지를 가진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고 각종 집단의 로비와 압력에 따른 정치논리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제주체이자 정치주체다.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공직 사회의 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이들에게 개혁이란 정부의 영역을 줄이고 시장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도와주는 손을 믿는 이들에게 개혁은 정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적절한 역할과 기능을 정의해주는 것이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부처 간의 영역 다툼과 업무 중복의 문제는 공직 사회 개혁의 큰 화두라고 할텐데, 이에 대한 처방은 보이지 않는 손이든 도와주는 손이든 유사하게 예산과 기능을 통제하고 적절히 영역을 찾아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정부의 존재 자체를 당혹스러워 하기 때문에 대처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도와주는 손은 정부를 순진하게 신뢰하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비효율성(중복)만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눈으로 보면 오히려 부처 간의 갈등과 경쟁 양상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경쟁’에 비밀이 숨어 있다. 영역 구분이 확실하게 끝나고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경쟁할 이유가 없다. 만약 정부가 정말 하나의 몸을 이루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는데 기꺼이 서로 협력한다면 만사형통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리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경쟁이 존재할 때 비교의 잣대가 있고, 적절한 경쟁의 규칙이 주어지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정부 속에서도 작용하는 듯이 부처들의 개별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국가 이익이 증진될 수도 있다. 그런데 부처별 경쟁에 의한 효율성 증대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각 부처들이 다양하고 과감한 정책 아이디어들을 발굴해 내고 이를 비교 검증하여 서로 경쟁적으로 모방하고 채택하는 게임에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관료주의의 병폐가 많이 남아 있는 우리 정부가 과연 이를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정책연구원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부 또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고 국민이 맡긴 소임을 다해내기 위해서는 더욱 열린 자세로 정책연구자들과 긴장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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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과학과 이학사
Johns Hopkins University 경제학과 M.A
Johns Hopkins University 경제학과 Ph.D
1997.07 ~ 2000.09 :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00.10 ~ 현 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보산업연구실 연구위원